아침부터 거센 바람과 비가 몰아친다. 어제보다 기온도 더 떨어져서 마치 한겨울같다. 라면과 빵으로 아침을 때운 후, 막심 택시를 9시 35분까지 오도록 부르고 숙소를 나선다. 왼갖 소리가 다나는 엘리베이터도 이젠 끝이지? 참 아무리 알 수 없다 해도 이렇게 엉터리인 집을 숙소라고 고르다니... 상트의 airbnb도 슬슬 걱정이 되네. 설마 이 정도는 아니겠지.
밖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이 놈의 택시가 이 모진 바람 속에서 기다리는 사람 생각을 전혀 하지 않네. 기다리다 못 해 결국 또 캐리어를 끌고 큰길로 내려간다. 막심을 포기하고 다른 택시를 잡으려고 해도 택시들이 도통 서지를 않네. 할수없이 38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와 겨우 택시를 잡아탄다. 1km 남짓 거리를 200루블이나 달라는 택시 기사가 고마울 정도로 날씨가 혹독하다. 한손엔 캐리어를, 다른 손으론 자꾸 바람에 날리는 모자를 붙잡고 낑낑거리며 걷는 건, 어쩌면 내 생애 최초의 경험일 터고,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짓이다.
10시 30분 경 페리 사무실에 도착해서 또 1km 남짓 걸어가 1차 수속을 마친다. 이곳에 가는 길도 그리 편하지 않네. 어떤 사람은 대행사 직원이 자기 차로 태워주기도 했다는데 그런 행운이 우리에게는 없나 보다. 첫날의 Alex가 아닌 GBM의 젊은 직원이 큰 키로 성큼성큼 앞서는 바람에 사람을 놓치기도 한다. 2시까지 다시 페리 사무실로 오라니 졸지에 또 시간이 3시간 가량 남는다. 점심은 먹어야지. 마땅히 시간보낼 곳이 없어 마침 눈 앞에 띄는 기차 대합실 건물의 스트로바냐로 들어가 이것저것 음식을 주문한다. 여기 사람들도 고수를 많이 먹는지 조리된 음식 위에 고수가 잔뜩 올려져서 먹을 게 별로 없다. 첫날 저녁처럼 광어 같은 생선구이와 보르쉬. 현숙은 감자조림에 빵. 뭔가 부족해서 밥에 스튜같은 걸 얹어서 가져온다. 식사를 마치고 한참을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그리드에서 케밥을 하나 사서 사무실로 돌아온다. 140루블 케밥 하나가 엄청나게 커서 한끼 식사로 충분하다. 따뜻하게 시간보낼 곳이 마땅찮아서 스트로바야에 들어갔는데 앞으로는 이 스트로바야와는 끝이다.
2시 조금 못 되어 GBM직원이 오더니 수입면장부터 건네준다. 이제 돈내고 차만 찾으면 되는 거네.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다는 느낌이다. 자동차 안의 물품검사는 알아서 다 했다는 말이렸다. 물품에 대해 특별히 다른 말이 없다는 건, 그 물품들에 문제가 없거나 그냥 검사하는 척만 했다는 말이겠지. 여전히 비바람 몰아치는 밖으로 나가 하역료를 주고나서 차를 찾으러 간다. 오토바이들이 먼저 나오고 드디어 내 차가 나오는데 정말 반갑다. 날씨가 이렇게 힘들지 않았으면 좀 덜 반가웠을까? 차를 끌고 시내 보험사로 가서 보험을 든다. 무조건 1달 기한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건 어쩌면 GBM 녀석이 잘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한다. 통관대행 수수료 8천루블을 건네줌으로써 이제 수속이 모두 끝났다. 출발만 하면 되는구나.
오토바이 일행과 서로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빌어주며 헤어지고 우리는 우수리스크를 향해 블라디보스톡을 떠난다. 우선 기름을 좀 채워야 하는데 갑자기 기름값에 혼동이 생겨 1,000루블 어치만 넣는다. 1리터에 46루블이라 800원 조금 못 되는 값이니 싸긴 하다.
시내를 통과하는 길은 그리 상태가 그리 좋지 않고 차도 많아서 좀 조심스러웠다. 시내를 벗어나니 4차선 고속도로가 나타난다. 예상치 못 했던 도로인데 노면 상태가 최상이고 차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주행에 전혀 지장이 없다. 단지 비바람이 너무 거세다는 것만 빼고. 바람이 엄청나다. 마치 차가 날려가는 듯한 느낌을 차안에서 받기는 처음인 것 같다.
우수리스크에 들어와 구글에서 찾기만 하고 예약은 하지 않은 Boyard 호텔. 구글맵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한 놈이다. 1박에 1,500루블 조식 별도. 호텔이 깔끔하고 방도 좋은데 냄새가 좀 나서 2층 냄새나지 않는 방으로 옮긴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정말 수고많았다. 방에서 좀 쉬다가 우수리스크 시내구경도 하고, 코리안 하우스라는 곳의 국수로 저녁을 때우려고 나섰는데 그 식당이 문을 닫아버렸네. 세상에. 인근 고려인 문화센터 부근의 마트를 찾아나섰지만 찾지 못 하고 결국 다른 마트에서 저녁거리 소시지와 보드카를 사서 돌아온다. 이 동네에서는 방향 잡기가 참 쉽지 않다. 집들이 거의 다 똑같이 생기고 비마저 오는 날씨라 힘드네. 구글이 없었으면 어찌 했을까?
차에 분명히 둔 쌀통을 찾을 수가 없다. 블라디에서 먹다남은 극소량의 쌀로 전기밥솥에 밥을 하고 가져온 반찬 등으로 저녁을 때웠다.
보드카 2잔에 잠이 쏟아져서 10시도 되기 전에 그냥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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