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6 하바로프스크-쉬마노프스크 840km

나쁜카카오 2018. 5. 23. 17:53

더러운 숙소가 아침에는 주방에서 키우는 바퀴벌레까지 보여준다. 하긴 우리도 바퀴벌레와 같이 산 적이 있지만 이제는 아니지. 어제 남은 밥과 김치볶음으로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그냥 지나치기만은 섭섭한 하바로프스크 명소 한 곳만 보기로 한다. 

아무르 강가, 높은 곳에 자리잡은 정교회 성당. 가까이서 보면 보수를 못 해서 곳곳에 칠이 벗겨진 흉물스런 모습도 보여주지만 멀리서 보면 금빛 양파지붕이 멋져보기만 한다. 러시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라니 모처럼 한번 들어가서 구경을 해주기로 한다. 성당 앞 넓은 광장에는 일찍 출근한 거지들이 두엇 있어서 이른 시간부터 관광일정을 시작한 한국인 관광객 1팀에게 구걸하는구나.






10시에 성당을 출발, 시베리아 벌판을 달린다. 

고속도로 노면상태는 일부분만 빼고는 매우 좋아서  크루즈 120이 가능한데 크루즈는 왠지 불안하다. 내가 제어하지 못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인가?

비로비잔 부근까지는 해발고도 5-60 정도의 끝없이 넓은 평원이 펼쳐지더니 지나면서부터는 고도를 높여 300정도의 산 언저리 도로가 또 끝이 없다. 자작나무도 끝이 없고, 간혹 자작나무가 드문드문한 지역에서는 또 역시 끝없는 평원밖에는 없다. 

마을은 1시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네. 경작지도 거의 보이지 않고 대부분 버려진 상태인 듯. 이 넓은 땅을 그냥 버려두는 게 마눌님은 매우 안타깝다. 오늘 처음으로 제법 많은 말이 풀을 뜯는 방목장을 딱 한번 봤다.

아무르 주에 들어서니 시간이 바로 1시간 늦어진다. 시간변경탑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인증샷도 찍어보는데, 이 조형물이 시간변경선 기념이라는 전설을 믿을 수가 없다. 관련된 설명이나 표시가 전혀 없고,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만 표기된 이 조형물이 어쩌다가 시간변경선 기념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시간 변경선이라면 시간대가 11개나 되는 러시아에 이런 조형물이 11개는 있어야 하는데 더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 했지? 



오늘은 700km 정도 떨어진 치올콥스키를 목표로 했는데 가다보니 길이 좋아서 가능하면 길이 좋을 때 좀 주행거리를 늘이려고 처음 목표했던 치올콥스키에서 50km 정도 더 가는 쉬마노프스크까지 달린다. 도로의 이정표에 치올콥스키는 없고 쉬마노프스크만 보여서 더 그랬다. 이정표에 표기할 정도면 큰 도시일 테고, 숙소도 더 다양할 것이라는 건 정말 시베리아를 너무 모르는 공상이 불과했다. 마을은 초입에서 보기에는 커보였는데 부킹닷컴에서는 호텔을 찾지 못 하고, 구글의 호텔은 없는 위치만 보여주네. 참으로 어이없고 답답하다. 지도에는 공항도 있다는데, 공항도 있을 정도의 큰 마을에 호텔이 없다니, 도대체 뭐가 맞는 거냐? 몇 군데를 허탕치고 시내를 헛바퀴 돌다가 마눌님 맵스미의 도움으로 고속도로 옆 가스티니차에서 겨우 방을 구한다. 오늘은 좀 일찍 숙소에 도착해서 빨래도 하고 할 예정이었는데 완전히 망해버렸다.

침대 2개만 덩그러니 있는 초라한 방 하나가 1,600루블. 식당을 겸하는 이곳은 주로 장거리 트럭들이 이용하는 곳인듯 하다. 식당 매점에서 닭다리, 가자미구이, 샐러드 등을 사서 보드카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일찍 잔다. 

내일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바로 출발할 예정이다. 통신 신호가 겨우 G하나, 그조차도 극히 미약한 이런 곳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상태가 적어도 이틀은 더 이어지지 않을까 싶네.

하루에 1천km를 달려보겠다는 건 시베리아를 너무 우습게 본, 그야말로 턱없는 공상이었나? 물론 볼 것도, 할 일도 아무 것도 없어 오로지 숙소를 찾아 달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역이지만 장거리 운전이 매우 피곤하기는 하네.

5번째 주유. 경유 값은 대체로 44루블, 우리돈으로 800원 정도다. 싸지만 거리가 워낙 길어 러시아에서 기름값만 80만원 정도 들겠다.

주유소가 수시로 있으니 처음에 가득 채웠다가 1,000루블 정도를 계속 넣으며 주유소에서 휴식도 취하는 방식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대형사고가 날 뻔했다. 120km로 달리고 있는데 저멀리 교차로에서 대형 트럭 하나가 그냥 좌회전으로 들어온다. 겨우 충돌을 피하고 빠져나온 건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김모씨 만세인가?  그런데 그런 사고 비스무리를 당하고서도 그냥 덤덤하기만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앞으로 그런 상황이 또 닥치면 무조건 조심해서 속도를 줄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