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3 비오고 추운 블라디보스톡. 루스키섬, 마린스키 극장 호두까기 인형

나쁜카카오 2018. 5. 18. 12:41

아침 베란다 온도는 14도, 그러니 방은 20도가 조금 넘겠지. 약간 추우니 난방을 해달랬더니 Oleg는 단칼에 No. 방방이  따로 난방이 되지 않는 구조라 당연하겠지만 손님은 그래도 섭섭하다. 베란다 문을 조금 열어놓으니 온도가 12도로 내려갔다. 비가 좀 그치는 듯 하더니 하루종일 어제보다 더 온다. 징그럽다.

라면과 누룽지로 아침을 간단하게 때운다. 내일 아침은 뭘 먹나? 

오늘은 뭘 하며 하루를 보내나 고민하다가 일단 추운 날씨 대비해서 패딩을 걸치고 루스키섬을 목표로 한다. 10시 좀 지나 나선다는 게 마트도 들리고 하다보니 버스는 11시에나 탄다. 15번 버스는 어찌나 느긋한지 졸로토이 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시내를 뱅글뱅글 돈다. 우리도 급한 건 없으니 시내 투어 하는 셈치고 느긋한 마음으로 구경이나 한다. 

다리를 건너니 바로 마린스키 극장인데 여기서도 한참을 더 가야 섬으로 건너가는 루스키섬 다리가 나온다. 세계 최장의 사장교라는데 인천과 영종도을 잇는 인천대교 이전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내 관심사가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극동대학을 지나 이 버스가 어디까지 가나 했더니 종점이 수족관이다. 분명히 관광시설인데도 마치 군사시설처럼 입구부터 통제가 철저하고 셔틀까지 운행한다. 웃기는 짜식들이네.


아무 것도 볼 것 없는 뷰포인트를 거쳐서 수족관 건물을 한 바퀴 돈 다음 내부에 들어가보려 했는데 입장권이 없으면 입장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하지. 매표소로 가서 표값을 보니 평일은 700루블이지만  휴일에는 1,000루블. 돌고래 쇼까지 포함된 금액인데 수족관이라는 걸 여기저기서 많이 봐온 터라 내부 관람은 생략키로 한다. 돌고래 쇼도 그게 그거지. 

수족관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설인가 보다. 5년 전 패키지로 왔을 때는 볼 것이 없어서 하루는 기차타고 아무르 만 구경을 갔었는데, 그때 수족관이 있었더라면 당연히 수족관에 왔겠지? 지금은 패키지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단다.

외부 조경이 재미있어서 외부만 둘러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단지 날씨가 개떡이라 어디든 따뜻한 실내가 필요했는데, 그걸 위해서 1,000루블을 쓴다는 건 명백히 낭비다. 정자같은 시설에서 마트에서 사온 과자로 깔딱요기를 하고 극동대학까지 5km 남짓 거리를 걸어가기로 했는데 입구로 나와 버스를 보니 마음이 바뀐다. 추위 탓이다. 맞은 편 정거장에 도착해 있는 버스는 출발시간이 될 때까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건너 편 정거장으로 오지를 않는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손님들을 위해 시간이 되기 전이라도 손님들이 버스 안에서 기다리게 하면 안 되나? 손님들도 누구 하나 기사에게 그걸 요구하는 이 없이 기다리고만 있으니 관광객인 우리라고 우길 분위기는 아니라 계속 춥기만 하다.

버스에서 내려 대학교 건물에 들어가려는데 여기도 경비가 있네. 왠일인지 그냥 들어가게 해주는데, 학생들은 신분증을 확인한다. 대학도 보안시설인가?

카페테리아 방식인 학교 식당에서 점심. 가격은 시내와 비슷하다. 커피가 공짜인 줄 알고 왠일로 공짜가 다 있나 했더니, 지켜보고 있다가 나갈 때 불러서 돈을 받는다. 세상에 공짜는 정말 귀하지. 커피는 20루블씩, 추가한 밥도 45루블이다.

밖에 나오니 여전히 바람불고 비오고 추운데 버스는 10분 이상이나 기다려야 했다. 마린스키 극장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극장은 최근에 지어져서 고전적인 웅장한 맛은 없다. 그냥 최신 시설. 시간이 1시간이나 남아 극장 안 카페에서 보드카와 케익으로 시간을 보낸다. 보드카뿐만 아니라 와인, 위스키 등 술이 많네. 술이 일상화된 서양.

한국에서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본 마눌님에게 이 러시아 시골변방의 호두까기인형은 별로인가 보다. 발레에는 그리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더욱 그렇겠지? 마린스키의 이름에 대한 감동은 본고장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나 가능하려나?



여전히 비가 내리는 버스정거장에서 10분 정도 기다려 탄 15번이 이제는 시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아파트 동네로 와버린다. 노선이 이렇게 되어도 되는 것인가 싶지만, 숙소에 빨리 오니 횡재한 기분이다. 현지인들이야 알아서 잘 타고 다니겠지. 다시 마트에 들러 부족한 저녁 보충을 위해 도시락 용기면을 사서 끓였는데 맛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