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에 잠이 깨 선실 밖을 나서니 바람끝이 매우 차서 놀랬다. 파도도 어제보다 좀 높아졌는데 선실에서 느낄 정도는 아니다.
6시에 아침을 먹는데 식권이 7천원이다. 이런 음식을 7천원씩이나 받다니 참 뻔뻔하다는 느낌이다.
아침먹고 샤워. 사우나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그냥 우리나라의 공중목욕탕이다. 잠을 자다가 영화 스노든과 스테이션7 등을 보다가 하며 시간을 죽인다. 지루해할까봐 걱정했던 마눌님은 의외로 지루하지 않다니 내가 지루함을 지나치게 견디지 못 하는 체질인가?
점심은 그래서 왜놈 라면 1개(3천원)로 둘이 때운다. 된장라면이라는데 맛이 진하다. 모자라는 양은 내려서 케밥으로 채우기로 한다.
1시 40분에 접안을 끝낸 배. 항해시간만 22시간 40분. 정말 지루한 시간인데 영화가 큰 도움이 되긴 했다.
1시 45분에 접안을 완료하고 2시 9분, 차량소지 승객을 가장 먼저 내리게 하기는 했지만 일반 승객이 바로 뒤따라와서 별로 의미는 없네. 입국심사는 10분 정도 걸렸는데 검색대를 통과해서 통관대행계약을 작성하느라 시간이 걸려 터미널을 빠져나온 시간은 2시 33분. 그래도 빨리 나온 셈이지? 유심을 사고 알렉스가 캐리어를 들처매고 호텔을 친절히 안내해준 덕분에 3시 반에나 창도 없는 호텔룸에 짐을 풀고나니 매우 피곤하다. 인터넷이 연결되니 살 것 같다. 이 중독을 어쩔 수는 없지.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그냥 있을 수는 없지. 4시에 관광을 나선다. 역 부근에 늘어서 있는 노점에서 케밥(150)을 하나 사서 모자라는 점심을 보충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대기 중인 역구내에 들어가서 케밥을 먹으며 열차를 구경한다. 한번은 타봐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게 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지만 그리 부럽지는 않다.
역에서 나와 혁명광장을 거치고 잠수함, 횡단열차 완공기념문 등을 지나 독수리 전망대로 올라선다. 블라디보스톡 시내버스 카드가 혹시 있나 물어보는데 알아듣지 못 하는 걸 보니 그런 건 없나보다. 하긴 버스비가 싸니... 열심히 걸어 올라가니 후니쿨라도 있다. 버스정류장 이름도 후니쿨라다. 우리가 탈 일은 없네. 올라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툭 트인 전망을 즐기는 건 좋은데 곳곳에 걸려 있는 자물쇠는 매우 거슬린다. 사랑이 변치 않도록 맹세하는 건 좋은데 아무 곳이나 설치하는 건 공해 수준이라는 느낌이다.
아르바뜨 거리를 향해 또 걷는다. 버스타는 게 익숙치 않으니 걸어야지. 아르바뜨 거리로 내려가니 해양공원과 바로 연결된 관광지라 그런지 사람이 매우 많다. 이 거리는 5년 전을 포함해서 아마 5번쯤 오는 게 아닌가 싶은데 도대체 이 동네에 뭐 볼 게 있다고 이렇게들 몰리는지... 전체적으로 깔끔하지 못 하다는 인상을 주는 블라디보스톡이지만 이 동네는 괜찮네. 그런데 벤치 등등에 왠 먼지가 이리도 많으냐?
떨어지는 해가 바다를 비추는 빛이 우리가 흔히 보던 것과는 달리 주황색을 띠어서 좀 이채롭다. 바닷물도 매우 깨끗하지만 발을 담그겠다는 충동은 그냥 없던 걸로 한다. 노래부르던 킹크랩을 찾아 주마를 겨우 만났는데 관광객들, 특히 젊은 한국애들이 바글바글한다. 부럽다. 역시 예약이 안 되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네. 내일 저녁을 예약해두고 돌아나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적당한 식당에서 아무 거나 먹자했는데 수프라인지 뭔지 하는 조지아 식당도 인파가 엄청나다. 카페테리아 정도의 식당(여기 말로 스트로바야)에서 음식 몇 가지를 주문해 맥주 한잔(흑맥주 500cc 160루블)을 곁들인다.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 마눌님이 이곳 음식을 즐기지 못 한다. 큰일이다. 호텔 인근의 한국수퍼에서 부탄가스(4개 179루블)를 발견하곤 안도만 하고 맥주 안주 크래커와 봉지과자만 산다. 11km 걸었다. 우리는 참 잘도 걷는데 사타구니가 좀 뻐근하네. 내일은 이만큼 걷지 않겠지.
방에 들어와서 배에서 다 마시지 못한 맥주를 찾으니 횡재한 담배와 함께 사라졌다. 내 팔자에 횡재는 없다고 낙담하며 어디에서 빠뜨렸을까 생각해보니 아마 통관대행 계약을 한 사무실이 가장 유력하다. 내일 가볼 것이다. 호텔 옆 구멍가게에서 맥주 1병. 키르키스스탄에서 온 젊은 녀석이 주인이네.
통신회사에서 보낸 문자를 구글을 통해 어렵사리 번역해서 보니 처음 계약과는 달리 15기가를 주는, 한 단계 낮은 상품이네. 이 역시 내일 민박집 가기 전에 확인해야지. 내일 할 게 많다. 호두까기인형 발레도 예약해본다. 불라디보스톡의 마린스키 극장은 루스키 섬에 있는 게 아니다. 루스키 섬은 다리를 2개 건너야 하는 먼 곳이다. 지도를 좀더 찬찬히 볼 일이다.
여기저기 곳곳에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단체팀도 2팀이나 보고 그외 둘셋이 다니는 아이들이 무쟈게 많네. 이러다가 이 동네에서 우리 말을 러시아말보다 더 자주 듣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지만 좋은 일이기도 하겠지. 버스타는 게 익숙해지기 전에 블라디보스톡을 떠나겠지?
'해외여행 > 유라시아 횡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D+3 비오고 추운 블라디보스톡. 루스키섬, 마린스키 극장 호두까기 인형 (0) | 2018.05.18 |
---|---|
D+2 비오는 블라디보스톡의 노동절, 킹크랩 (0) | 2018.05.17 |
D day. 4월 29일 드디어 출발.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톡 DBS페리 (0) | 2018.05.15 |
D-1 서울에서 동해까지 (0) | 2018.04.28 |
D-2. 거의 끝나가는 준비 (0) | 2018.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