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2 비오는 블라디보스톡의 노동절, 킹크랩

나쁜카카오 2018. 5. 17. 13:56

어제 많이 걸어서 잠을 잘 잘 것이라 기대했는데 새벽에 한번 깨고는 다시 잠들어 6시 무렵에 깬다. 밖에 나가보니 하늘엔 구름이 많아 비가 온다는 예보가 맞을 것 같아서 불쾌하다. 그 시간에 로비에는 아침식사를 한창 준비 중인데 동해 호텔보다 나아보인다. 9시 경에 식사를 마치고 밖을 보니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면서 하루종일 그 상태를 유지할 태세다. 노동절이라고 길을 막아서 난감하네.



유심 가게에 가서 따졌더니 인터넷 잘 되고 있느냐만 묻고는 다른 답을 하지도, 한다고 해서 내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만 하는 것 같아서 그냥 포기하기로 한다. 1,000루블에 한달 15기가면 괜찮은 것이긴 하지. 서둘러 통관사무실에 가니 담배와 맥주가 얌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나에겐 횡재수가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물건을 찾으니 정말 기분이 좋다. 그런데 단돈 1만원에 횡재 운운하는 내가 참으로 우습긴 하다. 

돌아오면서 ATM에서 루블화를 찾는 것도 연습해보니 잘 된단다. 수수료도 없이 20,500루블이 그냥 나오는데 기계가 알아서 고액권 소액권을 골고루 나눠서 내주네. 신통하다.

체크 아웃을 하고 버스를 타러 가는데 통제된 버스들이 어디로 경로를 바꿨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경찰에게 물어봐도 방향만 알 뿐이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1.3km)어 38번 버스를 타고 민박집이 있는 동네로 간다. 이제 겨우 하루 지났는데 점점 무거워지는 캐리어를 끌고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간다. 

민박집은 아파트 10층. 지은 지 3-40년은 넘어보이는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있는 언덕 위. 엘리베이터는 삐걱거리면서도 잘 올라가네. 전체적으로 20평 남짓해 보이는 실내는 이틀 묵기에 참을 만 하다. 주인 대신 자기도 여행자라는 Oleg가 설명을 잘 해준다. 집주인은 어쩌면 이런 집 여러 채를 가지고 있으면서 각각 따로 이런 관리인을 두고 임대하는 종류의 사업가인지도 모를 일이다. 


널부러지는 짐들을 대충 놔두고 1시 30분 비오는 블라디 시내관광을 나선다. 우선 점심. 케밥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아마 미국 Subway 짝퉁일 Subboy에서 샌드위치. 다먹고나서 보니 바로 옆 가게가 케밥 가게다. 노동절이라고 혁명광장에서 공짜 공연이 있어 잠깐 보는데 보자마자 끝나네.

특별히 할 일도, 볼 것도 없는데 매우 춥다. 바로 숙소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 버스투어를 해보기로 하고 아무 버스나 타본다. 31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타서는 한 30분 꾸벅꾸벅 졸다가 내려서 다시 31번을 타고 돌아온다. 날은 추운데 버스는 난방 생각이 전혀 없어서 버스 안에서도 춥다. 올 때는 다른 노선을 탔으면 했는데 마침 같은 노선 버스가 와서 좀 재미가 없기는 하다. 골목길에서 튀어나와 큰길로 좌회전하는 차량을 위해 버스는 당연하다는 듯 속도를 늦춘다. 이곳 운전방법을 좀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진이 무조건 최우선이 아니라면? 

다시 아르바뜨 거리로 와서 커피나 한잔하며 몸도 녹이고 하자 했는데 마눌님이 느끼한 샌드위치 소스 때문에 뱃속이 엉망이라며 그냥 집에 가잔다. 패딩을 그냥 두고나온 나도 많이 추워서 감기 걱정이 된다. 다시 38번(이 번호가 맞는지 아닌지를 한참 헷갈려 하다가 결국 구글의 도움을 받는다) 버스를 탄다. 

우선 마트에서 저녁에 먹을 맥주와 채소. 10.5라는 숫자가 반가워서 덥석 집은 맥주는 나중에 보니 알콜4.5도. 어쩐지 맛이 좀 싱겁다 했다. 맥주 살 때는 좀더 잘 살필 일이다. 마눌님은 노점에서 김치. 아파트가 밀집한 이 동네는 대형마트도 여럿 있는데, 그 마트 바로 앞에 노점 비슷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매우 생소한 공생구조를 보인다. 신통하네. 

드디어 킹크랩을 산다. 1kg에 1,100루블 짜리로 1.2kg정도. 셋이 먹을 양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Oleg는 다리 하나로 맛만 본다. 또 다른 guest 젊은 Alexei는 오트밀을 먹으면서 기어이 게는 사양한다. 그래서 둘이서 싫컷 먹었나? 킹크랩은 껍질이 부드럽고 속살이 잘 빠져나와 먹기에는 좋은데 맛은 역시 꽃게를 따르지 못 한다. 집게 부분의 맛이 다리보다는 좀 낫다는 게 현숙의 평. 약간 모자란 듯 하지만 당분간 게는 끝(이라고 선언하고 싶다).


내일 아침거리를 위해 다시 마트. 저녁은 결국 라면에 달걀. 쉬어빠진 김치를 해결하기 위해 돼지고기도 산다. 얼지 않은 놈들은 정육점에서 잘라둔 크기대로만 사야 한다네. 괴상한 동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