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7 쉬마노프스크-로즈아예바 904km

나쁜카카오 2018. 5. 23. 17:56

어제 낮에 잠깐 해가 비춰서 좋다 했는데 저녁 무렵 한두 방울 보이던 비가 밤새 내리고 아침에도 그치질 않는다.

이르쿠츠크까지 남은 거리는 약 2,400km. 2박 3일의 거리이니 오늘 숙소로 예정했던 야로페이는 통과하고 나면 오늘 밤도 어렵게 숙소를 구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가능하면 주행거리를 늘이자. 이르쿠츠크에서 가면 좀 사람답게 지낼 수 있을까? 

인터넷이 거의 되지 않는 이런 오지에 올 때는 사전준비가 매우 철저해야 할 것이다. 너무 쉽게 봤다.

이곳 사람들이 밥을 좋아하나 보다. 빵과 밥을 같이 먹는 걸 보니 좀 신통하기도 하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도 밥을 사서 고기 등을 얹어 보르쉬와 함께 먹는다. 마눌님는 그나마 보르쉬가 시원하다며 먹을 만 하다네.

8시 27분 출발. 목표는 일단 우리나 카르니나. 약 900km의 거리를 주파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비는 그치지를 않는다. 여전히 자작나무 숲. 진달래(?)일지도 모를 꽃이 자작나무 숲 아래에서 만발해 있네. 오늘 코스는 유라시아 횡단에서 가장 힘든 구간.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라 주유소, 숙소 등의 거리가 매우 멀어서 기름을 잘 챙겨야 하는 곳.

 

 

 

1시간 정도 지나서 만난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보온병에 물도 채운다. 5루블. 기름을 일단 천 루블 어치만 넣는다. 비가 여전히 잘도 내려서 노면이 미끄러우면 속도를 못 낼 텐데 하는 우려는 여전히 자작나무만 보이는 도로에 올라서자 없어져서 그냥 120을 밟는다. 자주 보이는 쉼터에서 잠시 쉬면서 메모리에 들어 있지만 쓰지는 못 하던 음악을 핸드폰으로 옮겨 나흘만에 차안에서 음악이 흐르니 심심한 건 좀 줄어든다.

도로는 고도를 점차 높여 600을 훌쩍 넘어서 시베리아 고원지대에 들어섰음을 알린다. 가스티니차 겸 카페에서 점심. 이곳 음식들은 다 똑 같다. 다시 기름을 천 루블만 넣는다. 곳곳에 도로공사하는 구간이 많지만 공사구간이 길지 않아서 속도는 거의 그대로 유지가 가능한데, 도로의 요철이 심한 구간이 가끔 나와서 차를 요동치게 한다. 

고개를 넘기 전에 가스티니차와 함께 있는 마지막 주유소는 매우 허름해서 주유구에서 기름이 나올까 싶을 정도다. 통과. 예로페이를 지나 아무르 주와 자바이카이스키 주의 경계인 시베리아 고원지대 정상(해발 727)에서 인증샷을 찍고 이제는 내리막이려니 기대했는데, 웬걸 고도는 더육 높아지고 길은 산속에서 헤맨다. 나중에는 920까지 찍는구나. 

 

 

 

한참을 가니 주유소 안내판이 보여 들어갔는데 주유소는 보이지 않고 마을만 나온다. 목표 지점인 로즈야예바의 마작 가스티니차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나온 건 실수. 많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 주유소는 나타나지 않고 기름은 달랑거린다. 할수없이 부근 쿠테챠란 마을에 들어가 동네사람들에게서 기름 20리터를 얻는다. 참 희한한  경험도 다해본다. 러시아 시골 사람들의 친절함을 겪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약 80km를 더 가니 주유소는 반대편에 있다. 여기까지 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마음을 졸이는 마눌님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냥 올 수는 없었겠지.

예정보다 1시간 늦은 7시에 고대하던 숙소에 도착했는데 샤워도 없는 화장실이 딸렸다고 2,400루블이나 받는다. 게다가 세탁기 사용료 150루블 별도. 야박하게 생긴 여편네가 바가지 씌우면서 돈을 꼬박꼬박 챙기네.

밥을 하고 김치와 남은 소시지 등에 보드카 병을 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