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1 니즈네우딘스크-아친스크 722km. 오늘까지 5,369km

나쁜카카오 2018. 8. 18. 17:53

MTS 앱이 있어서 깔아보니 내 사용량이 잘 나와서 좋다. 러시아말이긴 하지만 관계없네. 오늘 아침까지 9.2기가 남았으니 5.8기가를 쓴 셈이다. 많이 썼네. 앞으로 남은 기간이 16일.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곳에서는 마눌님 폰을 컴에 연결하지 않을 일이다.

어제 날이 그리도 좋더니 아침에 또 눈발이다. 그냥 그칠 눈이 아니어서 출발 후 두어 시간이 지나도록 퍼붓더니 어느 지역에서는 화이트아웃까지. 참 대단하다. 

눈이 그치고나니 어느새 이르쿠츠크 주에서 크리스노야르스크 주로 바뀌면서 시간이 또 1시간 늘어진다. 세 번째 시간변경. 역시 시간변경탑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인간이 그 탑을 시간변경탑이라고 이름붙였는지 그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건 어디에서나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터.

해가 나오니 그제야 풍경이 보이는데 어제와 똑 같다. 어떻게 약 3천 km의 거리에 보이는 게 똑 같을 수 있는지 참으로 경탄스럽다. 산은 온 천지에서 사라져서 없고 오로지 벌판만 있는 중에 자작나무는 꿋꿋이 모습을 보인다. 무려 5천km 동안 자작나무와 간간이 보이는 (러시아)소나무. 자작나무는 단단한 재질로 목재로 좋아 러시아의 중요한 임산물이라는데 아름드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가늘어 보이는 나무로도 목재가공이 가능한가 보다. 보이는 게 어제와 똑같으니 사진을 찍을 것도 없다. 어쩌면 오늘이 우리의 전 여행기간 중에서 가장 사진이 없는 날일게다.

길은 그동안 늘 괴롭히던 공사구간이 가장 적어 속도를 마음껏 높일 수 있네. 여기서도 소는 조심해야 한다. 하긴 소뿐만 아니라 개도 도로를 느긋하게 건너다니는 동네이니 앞에 동물이 보이면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더 무섭다. 

점심은 길 옆 숨은 도로에서, 어제 저녁을 먹고 아침에 먹고도 또 먹다남은 밥과 반찬으로 차안에서 간단히 해결한다.

크라스노야르스크 부근에 오니 도시라고 집들의 색깔이 매우 밝아진다. 시골의 우중충하게 썩어가는 색깔에서 벗어나니 기분도 좋다. 출발 때부터 이정표로 보이던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매우 큰 도시인지 도로가 아주 멀리서 우회해버린다. 그래서 도시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

기름을 넣는데 뒤따라 기름넣던 녀석이 매우 아는 척을 한다. 혹시 한국 돈을 바꾸자는 말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네. 그냥 한국 번호판이 보여서 아는 척 한 것 같다. 제 놈이 한국을 좀 안다 이거지? 

아친스크 호텔을 예약했는데 호텔의 위치가 참으로 개떡 같아서 어떻게 이런 곳에 호텔이 있나 싶을 정도네. 그래도 구내는 깔끔하고 방도 괜찮다. 1층방을 달래니 200루블을 더 달란다. 거기에 아침식사 더하고 해서 2,500루블. 그만 만해도 좋은 거지. 영어를 거의 못 하는, 출산이 임박한 여직원과 수속하느라 몹시 힘들다.  게다가 여권 전 페이지를 다 복사하느라 시간도 무지 걸린다. 호텔 직원이 영어를 하지 못 하는 건 호텔 영업을 위해서 절대로 바람직한 게 아니다. 젠장, 이틀 연속 말도 통하지 않는 인간들과 손짓으로 방을 구하다니...

남은 밥을 다 해치우는 저녁식사. 니즈네우딘스크에서 혹시하고 사본 캐비어는 철갑상어 알이 아니고 비린내나는 연어 알 같은 것. 캐비아는 역시 돈값을 하는 물건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내일은 노보시비르스크에서 1박할 예정. 그러면 남은 거리가 다소 부담되기는 하지만 어떻게 되겠지.

산길샘으로 계산한 결과는 오늘까지 5,445km. 자동차 계기판과는 약간 차이가 난다. 모스크바까지 남은 거리는 3,500 정도지? 도상거리보다 좀 많이 나오는 건 항상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