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7 메드베독 -카잔 275km

나쁜카카오 2018. 11. 5. 14:14

잠을 깨니 4시 50분인데 해가 벌써 떴다. 어제 해가 일찍 떨어진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시간이 경도에 맞지 않게 조정된 탓이다. 

아침은 생략하고 일찍 출발할 생각이었는데 끓인 물을 보니 생각이 달라져서 라면을 하나 꺼내어 물을 얻는다. 러시아의 첫 라면. 정말 맛있네. 마눌님은 간밤에 배탈이 났다고 아침 생략. 숙소 벽에는 우리 이발소 그림같은 게 몇 개 붙어 있어서 재밌다.


아마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건 처음이지? 방향이 다르다고 풍경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고 좀 졸려서 마눌님에게 핸들을 넘기고 잠시 쉰다. 길이 이상해졌다 해서 깨보니 다른 길이라 핸들을 넘겨받고 차를 돌려 제길로 접어든다. 마눌님이 이제 길을 제대로 볼 줄도 알게 되고, 정말 많이 발전한 거다.

타타르 공화국에 들어와 보는 첫 마을이 매우 크고 지금까지 봐왔던 러시아 마을들과는 색깔이 다르다.

인구의 41% 정도가 무슬림이라는 타타르 공화국. 무슬림이라서 잘 사는 게 아니라 주민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효과적인 정책을 펴는 지방정부 덕분이겠지. 그래도 도로는 그리 편치 않은 곳이 많다.

아르스크라는 마을에서 잠시 쉬며 도시 구경도 해본다.


드디어 카잔 시내로 진입한다. 우선 먼지가 없으니 도시가 매우 깨끗한데 도시 설계가 예뻐서 더욱 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 같다. 시내를 관통해서 카잔 크렘린에 도착한다. 책으로도 많이 보고 노래로도 많이 듣던 볼가 강을 보니 왠지 감개가 무량하다는 느낌이다.


하얀 색 성벽이 매우 인상적인 크렘린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니 모스크의 파란 첨탑이 환상적이다. 구내를 이리저리 다니며 마그넷도 하나 사는 등 제대로 관광객 모드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50루블 짜리 계단을 올라보니 창이 너무 작아 실망이다.


날이 덥고 어제의 피곤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는지 몹시 힘들다. 크렘린을 나와 성벽 그늘에서 잠시 쉬며 남은 일정을 이야기하다가 수즈달은 다행히 600루블만 내면 취소된다 해서 포기하고 카잔에서 하루 쉬기로 한다. 예쁜 카잔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고 많이 피곤하기도 했다. 아파트 하나를 예약해서 바로 체크인한다. 

아파트는 늘 집주인과 만나기가 어렵다. 블라디보스톡부터 봐온 것인데 러시아 사람들은 방에서 신발을 벗고 사나보다. 그런데 현관이 따로 없어 좀 불편하네. 외부는 허름한데 방은 넓고 깨끗해서 좋다. 부엌에 이리저리 남은 음식들이 많네. 냉동실의 아이스크림 하나씩 해치우고 만두 비슷한 음식도 데워서 먹어보는데, 그건 실패한 것 같다. 배가 고픈데 나가서 먹고 다시 들어오기는 귀찮으니 어쩔 수 없었다.

좀 쉰 다음 버스정류장 옆의 KFC에서 맥주와 핫도그 등의 요기부터 관광을 시작한다. 버스를 타고 대형 솥단지 인근에 내려 슬슬 걸어가니 강변으로 산책로가 나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오간다. 우리도 천천히 걸어본다. 

건너편 크렘린과 기타 조형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매우 좋고 강변에서 사랑를 속삭이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예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우리 단체 사진도 하나 찍었다. 블라디보스톡 이후로 아마 처음이지?


석양에 붉게 물드는 하얀 성벽을 기대했는데 시간이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강을 건너 성벽 둘레도 걸어보며 시간을 맞추려고 애만 썼다. 산책하는 사람과 자전거가 매우 많다. 지금까지 봐온 도시들 중에서 가장 예쁘고 깨끗한 데다 사람들의 여유가 보이는 것 같아서 도시가 아주 마음에 든다.



석양 색깔도 약하고 해서 석양에 물든 성벽은 아깝지만 포기하고 젊음의 거리를 찾아간다. 마눌님이 어떤 블로그에서 봤다는 인생샷 장소는 결국 찾지 못 했지?

사람은 누구나 게으르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로 만들었다는, 거만하게 누운 고양이 조각상이 있는 젊음의 거리. 술집과 젊은이들이 역시 많다. 샤슬릭과 맥주로 저녁.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크렘린 안 모스크 첨탑의 조명이 매우 예쁘다. 무슬림의 미적 감각은 탁월하다는 느낌이다.


버스를 타고 돌아와 바로 뻗는다. 이제 피로가 좀 풀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