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21 모스크바 관광 2일차

나쁜카카오 2018. 11. 6. 13:33

5시 반에 눈을 뜬다. 밖을 보니 비가 부슬거리고 나가보니 서늘하다. 오늘은 좀 쌀쌀하다고 하긴 했다.

아침을 어쩌나 고민하다가 결국 라면으로 때운다. 라면이 맛있다.

느긋하게 11시 반쯤 시내관광을 나선다. 지하철역이 바로 옆이라 매우 편하다. 아르바뜨역까지는 20분 정도 걸리네. 비가 부슬거리는데도 붉은 광장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다. 바실리 성당은 마눌님 혼자서 내부 관람.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좀 지겹기는 하지만 나는 성당 등등을 돈주고 내부구경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볼쇼이 모스크보레트스키 다리를 건너면서 보는 크렘린 성벽과 바실리 성당이 그림인데 비가 걸치적거려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구나. 아깝다. 다양한 형태의 유람선이 매우 많이 다니는 모스크바 강의 강변도로를   열심히 걷는다. 강물은 당연히 더럽다. 화장실이 없어서 죽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볼쇼이 카멘리 다리 아래 딱 하나 있어서 겨우 살았다. 화장실은 정말 필요한 시설이다. 특히 도시에서는.



빠트리아르쉬 다리와 건너편 예수성당의 경치가 기막히다는 식당 스트렐라에 들어가 스테이크로 점심. 양이 매우 작아서 몹시 실망했다. 어떤 인간이 러시아 음식의 양이 많아서 1인분으로 2명이 충분하다고 말했나? 비오고 바람부는 추운 날 거리를 헤매느라 몹시 피곤했는데 음식과 맥주가 들어가니 그냥 졸린다. 식사를 마치고 불편한 의자에서 한참을 졸았다. 

러시아에서 좋은 점 하나는 식당에서 아무리 오래 죽쳐도 나가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 여기 사람들도 식당 등에서 한없이 앉아서 수다를 떨거나 한다. 우리는 수다 대신에 잠을 잔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관광객 모드에 힘을 붙인다. 보행 전용인 다리가 매우 넓어서 많이 의아하다. 다니다 보면 러시아 또는 모스크바는 엉뚱한 곳에 돈을 들여 주민이 편하도록 배려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애시당초 국민을 위한 배려는 전혀 없다는 것이 전체적인 느낌인데 가끔 이렇게 엉뜽하게 재원을 낭비하는 이유는 아마 공산당 독재국가의 한심한 관료주의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그런 세월을 겪었다.

아르바뜨 거리를 찾아 슬슬 걷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시간이 일러서인지 한산하고 특별한 이벤트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뭔가를 보러 나왔는데 막상 볼 것은 없으니 실망스럽겠다는 마눌님의 지적은 예리하다. 블라디보스톡의 아르바뜨 거리가 모조품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올 정도로 여기 원조 아르바뜨 거리는 길고, 시간이 되면 그럭저럭 볼거리도 많겠다. 아직은 이르다.

 

러시아인이 가장 좋아하는 푸시킨 동상도 여기에서야 본다. 푸시킨은 내 취향이 아니다. 빅토르 최와 관련된 기념물은 벽면에 그린 그래피티 하나로 끝내는구나. 뭔가 대단한 기념물이나 공연장이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좀 실망이다. 아르바뜨 거리를 나와 엄청난 규모로 땅을 차지하고 있는 롯데호텔 앤 리조트 로비에 들어가 화장실을 잠시 쓴다. 

우즈베키스탄 전문식당인 차이호나에서 볶음밥과 샤슬릭에 맥주. 잠이 또 온다. 할수없이 안락한 의자에서 한 30분 푹 자고나니 매우 개운해서 기운찬 관광객이 된다. 개운해진 몸으로 식당 밖에 나오니 하늘이 갠다. 이 놈의 하늘이 낮에는 비가 와서 괴롭히더니 밤에 되니 해가 빨리 지지 않아서 괴롭힌단다. 마눌님의 재치가 즐겁다. 

붉은 광장에 다시 가니 굼 백화점의 조명이 압권이다. 건물 전체를 감싼 전등과 붉은 광장을 밝히는 대형 조명이 매우 잘 어울린다. 무슨 축제시설 공사 때문에 바실리 성당의 경치가 가려진 건 참 아쉽다. 어쩌겠어... 

광장 주변 건물들의 조명도 참 예쁘고, 굼 백화점 옆길인 니콜스카야 거리의 조명은 정말 예쁘다. 모스크바의 야경을 빼먹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이번 여행은 성공이라는 성급한 생각도 해본다. 모스크바 지하철의 대단한 규모와 장식은 빼먹게 되겠지?


다시 지하철을 잘 타고 호텔로 돌아와 맥주와 치즈로 모스크바 관광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