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61 오슬로

나쁜카카오 2018. 11. 15. 11:21

새벽에 주차장가는 길은 아직 청소가 덜 된 탓인지 매우 지저분하다. 전날 밤이 진창 놀이판인 모든 대도시의 새벽은 다 그렇지? 보안이 철저한 나라라 주차장 빌딩의 문이 다 잠겨서 보안요원의 도움을 받아 들어갔는데, 알고보니 주차증으로 문을 열 수가 있네.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센싱하는지 모르니 마찬가지다. 

오늘도 하늘은 매우 맑다. 더울 참인가 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기온은 23도밖에 안 된다. 참 알 수 없는 기후다.

호텔의 아침이 매우 근사하다. 이때까지 보지 못 하던 음식들이 즐비하고 맛도 좋아서, 가장 훌륭한 아침식사가 아닌가 싶다. 마눌님이 좋아하는 삭힌 청어 요리도 3가지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치즈나 햄도 많고... 포르투보다 나은 것 같다. 그동안 음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좀 많이 잘 먹자 했는데 워낙 국물요리를 좋아하는 탓에 커피, 생딸기주스에 오렌지주스까지 보탰더니 배가 불러서 음식을 제대로 먹은 것 같지 않다. 내일 아침은 기필코 빵 위주로 먹어야지.


다음 일정을 바르샤바로 정했으니 비행기, 숙소 등등을 예약해야지. 비행기 예약을 하니 출발공항이 오슬로에서 120km 정도 떨어진 Sandefjord공항이다. 물론 오슬로에는 가르데모엔 국제공항이 오슬로 근교에 있기는 하지. 그래도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공항을 오슬로 공항이라 우기는 노르웨이와 오슬로의 배짱은 놀랍다. 다행히 시간이 밤 9시 20분이라 오슬로에서 좀더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는 있겠다 싶다.

예약을 다 마치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먼저 뭉크를 보러간다. 호텔에서 걸어서 약 20분 거리. 공원이 참 많은 도시라 여기저기 공원을 횡단해서 가다보니 자연사박물관이 나온다. 디자인이 참 예쁜 도시, 그러나 사람이 우선인 도시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주마간산으로 박물관을 해결하고 바로 옆 뭉크에게 가니 입장료가 120Kr. 지하의 라커에 배낭을 넣고 1층 전시장에 가니 참 실망이다. 전시된 그림 수도 적은 건 그렇다 칠 수 있지만, 그림의 분위기가 너무 음울하고 게다가 '절규'는 여기가 아니라네. 마지막 전시실은 스스로 그림을 그려 걸어놓게 되어 있어 마눌님의 그림도 하나 걸었다. 뭉크를 잘 모르지만, 이런 정도를 알려고 120크로네나 낸다는 건 참 억울한 거다. 플롬 산악열차나 송네피요르드 유람선과 똑같다. 실망스러움을 확인하기 위한 비용. 이런 비용이 꼭 필요한 이유는 우리는 내가 경험하지 않으면 믿지 않기 때문이지.


오슬로는 도시가 작아서 어디든 살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이지만, 그래도 동서로 횡단해야 하는 경우는 힘들다. 뭉크의 피로감과 도시의 피로감이 합쳐서 시청사와 왕궁 등은 좀 미루고 일단 호텔에 돌아가기로 한다. 마침 가는 길이다. 아랍인 밀집지구인 듯한 동네(그뢴달)에서 마눌님이 좋아하는 망고 5개에 75크로네. 내 점심은 이런저런 것 섞어서 대충 해결한다. 한잠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고 다시 관광에 나선다.





주차권을 확인하러 프론트에 가니 어제 그 직원은 여기가 아니고 Terminus 직원이고 주차장도 다른 곳이라네. 이런 젠장. Terminus에 가니 마침 그 직원이 있어서 할인 확인을 받고 차를 뺄까 하고 가니, 이런 또 젠장, 배터리가 방전됐다. 어제 주차하느라 진을 빼고 정신이 없어서 냉장고는 생각도 못 했네. 아침에도 괜찮아서 그냥 넘겼더니 이런 일이...

여기저기 알아보니 내가 직접 해결하는 수밖에 없네. 마침 주차된 쇼핑센터 4층에 종합판매점인 Clas Ohlson이 있어서 충전기를 쉽게 살 수 있었는데 주유소에서도 더 나은 물건을 팔지도 모른다는 Ohlson 직원의 말을 듣고 마눌님은 주유소까지 기어이 가보잔다. 덕분에 약 4km 정도 걸어서 주유소 3곳을 찾아다니며 오슬로 시내 관광을 잘 했지만, 가게가 딸린 주유소가 오슬로 시내에는 없다. 결국 그 충전기로 충전을 한다. 배터리가 아니라 배터리 충전기라 시간이 걸리는 불편은 있으나 어쨌든 해결은 했으니 다행이다. 그래서 오후 관광은 매우 힘든 도보관광을 한 셈이 되어버렸다. 

김도 새고 진도 빠지고 해서 마트에서 맥주와 치킨을 사서 저녁을 때운다. 이래저래 금주가 참 어렵다.

늦은 시간, 어쩌면 오슬로의 마지막 밤인데 그냥 보낼 수가 없다며 마눌님이 밤나들이를 나가잔다. 이건 참 잘한 일이다. 몹시 피곤하지만 중앙역 쪽으로 슬슬 걸어가다가 어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던 거리로 방향을 바꾸니 매우 재미있는 곳이 나타난다. 우선 성당 아래의 카페. Cafe Cathedral이라니 참으로 기발하지?


왕궁가는 길로 접어드니 Oslo Pride 축제를 즐기는 인파로 엄청나게 요란하다. 왕궁부터 해결하기로 하고 올라가니 매우 소박한 건물이 나타난다. 보초 단 3명이 있을 뿐이다. 권위와는 담을 쌓은 곳. 왕궁 입구에서 마눌님은 보초와 인증샷을 찍는다. 스마일, 그러니 예쁜 미소도 지어주는구나. 근무시간 내내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어야 하는 다른 나라 보초들과는 달리 여기는 일정한 시간마다 일정한 거리를 움직인다. 추측컨대 오래 서있으면 힘드니 다리를 풀라는 배려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다시 이, 사람이 우선인 나라가 부러워진다. 내일 7시부터 왕궁 정원을 개방한다니 이건 보고 떠나야겠지? 


돌아오는 길에 시청사도 구경한다. 내부는 내일로 미룬다. 국립극장 쯤되는 건물 앞에서 입센의 동상도 기념한다. 동상이 매우 지저분하다. 그간 도시를 많이 들리지도 않았지만, 저녁 매식을 거의 하지 않은 탓에 들린 도시에서도 밤거리 구경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밤거리를 보니 눈이 매우 즐겁다. 유럽의 밤거리가 이렇게 북적이는 곳은 아마 처음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축제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리스본 정어리 축제 때도 길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났었지.


내일 볼 것이 많다. 왕궁 정원, 시청사  내부, 아케르스후스 요새.

돌아오는 길에 들린 오슬로 프라이드 행사장은 참으로 멋진 곳이다. 뭐 결국 술판이지만, 어떤 방법이든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이런 식으로 즐긴다는 건 매우 부럽다. 자랑스러운 내 나라, 사랑하는 내 나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근혜 등이 망치고 좃선조작일보와 태극기 부대가 그 꼭대기에서 점을 찍고 있지만 노무현과 문재인이 그 부끄러움을 털어내기 시작한 지금, 대한민국에도 머지 않아 그렇게 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