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59 트롤퉁가 21km

나쁜카카오 2018. 11. 14. 21:58

상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 밥을 먹든지 준비를 하든지 하자 해서 5시 반에 캠핑장을 떠나 Tyssedal을 거쳐서 트롤퉁가 주차장으로 열심히 올라간다. 약 30분 걸려 도착한 Stygge 주차장을 지나 상부 주차장을 찾아 열심히 가니 이런, 이 길이 아닌가벼. 다시 내려가서 제 길을 찾아 올라가서 제대로 찾았는데 이번에는 요금소 천장 높이가 2m밖에 되질 않네. 다시 캐리어를 내리고 간신히 통과했다. 어떻게 그런 높이로 출입구를 만들 수 있나.

꼬불길로 고도를 440 정도 높이는데, 4km인 이 길을 걸어올라가는 청춘들이 많다. 이 길을 걸어오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힘이 다 빠지게 생겼는데, 청춘들은 잘도 올라가네. 부럽다.

상부주차장에는 6시 20분 도착, 준비한 김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트롤퉁가 구경에 나선다. 트롤퉁가가 뭐라고, 이 새벽에 이 높은 산까지 차를 타고 올라와서 이러나 싶기도 한데, 높은 곳의 경치는 늘 좋다. 주차장에서 트레일 입구까지 약간 내려가는 길. 나중에 돌아올 때 고생 좀 하겠다 싶다.


트레일 입구에서 인증샷을 찍고 일단 호기롭게 출발한다. 조금 지나니 트롤퉁가가 10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트롤퉁가까지의 트레일 고도표가 약 4.1km까지는 좀 힘들 거라고 보여주지만 초반은 길이 편해 거의 산책로다. 해발 900이 넘는 산중에 너른 벌판과, 곳곳의 집들과, 호수와, 아직 녹디 않고 점점이 박힌 눈들과, 더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시냇물과...







우리는 이 새벽 7시에 이제 산행을 시작하는데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매우 궁금했는데 산속에 점점이 박힌 색색의 텐트들을 보고는 이해가 되었다.

트레킹을 시작하는 것이니 초반 오르막은 잘 오른다. 고개 위에 돌아보니 저멀리 빙하를 안은 산들의 경치가 장하다. 길을 갈수록 경치는 더욱 좋아지고 산속에서 밤을 지새는 곳곳의 텐트들이 그림이다. 절벽 거의 끄트머리에도 텐트를 치고 잘도 자는구나. 우리나라도 이렇게 깊은 산속에 편하게 텐트를 치게 하면 좋겠다 싶은데, 그러면 산이 개판되겠지? 하긴 생각해보니 그런 곳이 없지는 않네.


고개를 넘으면 길은 다시 내려가지만 가파르지는 않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이미 15km 정도를 걸어 기진맥진한 상태일 것이니 이 길을 올라오는 게 거의 죽을 맛일 게다. 더욱이 이 동네 산의 트레일에는 나무가 없어 그늘도 없다. 그냥 땡볕을 걸을 수 밖에 없는데, 다행히 높은 위도와 고도 덕분에 기온이 높지 않아 걸을 만은 하지만, 그래도 땡볕 20여 km는 힘들다.

갈수록 절벽과 호수가 만들어내는 경치는 더욱더 기막히다. 세상에 이런 경치가 어디 또 있을까 싶게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의 경치가 이어지니...



대피소라고 할 rescue center도 두어 곳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보이는데 실제로 얼마나 사용될까 싶기도 하다.

길이 편하다지만 거리가 10km이니 마지막 1km가 지옥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한다. 그런데 트롤퉁가가 갑자기 나타난다. 딱 4시간 걸렸으니 길이 편하긴 하다. 


사진으로는 맞은 편과의 거리가 상당해 보여서 찍는 순서를 어떻게 하나, 사람들이 많아서 많이 기다리게 되면 어쩌나 걱정을 좀 했는데, 그 거리도 얼마 되지 않고 다행히 사람들도 많지 않아 조금 기다리면 금방 순서가 돌아온다. 그래서 마눌님은 처음에는 나와 같이 가면서 먼저 발을 걸쳐보고, 두 번째는 기어이 끄트머리에서 발을 달랑거리며 사진을 찍는다. 바위 앞에 서면 제법 넓고 아래가 보이지 않아 별로 무섭지는 않은데 도착해서 먼저 보게 되는 경치가 계속 연상되어서 바위는 무섭다. 나는 겁이 나서 그다지 무서워 보이지 않는 평평한 바위 위에서 고도가 주는 공포감으로 벌벌 떨었다. 나중에 한번 더 그 바위에 올라가보고 싶긴 했고 한번 뛰어볼까 하는 생각까지는 해봤는데 참길 잘 했다. 

대체로 끄트머리에서 발을 달랑거리는 건 여자들이 많이 한다. 






트롤퉁가 그 바위말고도 주변은 온통 절벽이라 왕복 20km의 고생길이 전혀 힘들지 않다는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하지만 사실은 돌아와서 다들 반쯤 죽었지.


그냥 돌아오기엔 경치가 너무 아깝고 10km의 고생길도 아깝고 해서 준비해간 김밥을 먹으며 한참을 논다. 1시간 쯤 보냈나 싶다. 오늘은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단체 관광객이 몰려오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사진 한장 찍으려고 기다려야 한다네. 그런데 이 고행길 10km, 왕복 20km를 단체로 올 관광객이 얼마나 될까 싶기는 하다.

돌아오면서 노르웨이의 폭포 아래 시냇물에서 족탁도 하고 물도 받아서 마른 목을 채운다.발이 많이 시원해 지긴 한다.

하산길에는 특히 산에서 비박하려는 청춘들을 많이 만난다. 캠핑이 금지되었다는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는데도 이렇게 많이 박배낭을 짊어지고 올라오는 걸 보면 무조건 막는 건 아니지 싶기도 하다.


주차장에 돌아온 시간은 3시 44분, 꼬박 9시간 걸렸으니 매우 잘한 거다. 하긴 거리만 멀지, 길은 편한 편이니 당연하기도 하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맥주를 2캔 사서 우선 1캔으로 목을 축인다. 정말 시원하다. 산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목을 축이기는 했지만 계곡물을 다시 받기가 께름직해서 버텼더니 목이 많이 말랐다. 5일만에 금주가 깨졌다. 어쩔 수 없다. 이런 날 뒤풀이 맥주 한잔이 없을 수는 없다. 텐트로 돌아와서 모두 뻗었다.

저녁은 남은 맥주 1캔과 크래커 치즈 샌드로 때우려고 했는데 결국 컵라면 하나를 끓인다. 많이 힘들지만 그만큼 뿌듯하기는 하다. 21km, 우리가 걸은 가장 긴 거리가 맞다. 거기에 더한 절경 체험.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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