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근처 작은 마트에서 아침거리를 사왔는데 마눌님이 도저히 이 집에서 지낼 수 없다며 집을 옮기잔다. 제사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칼조차 변변한 게 하나 없고 접시는 물론 냄비도 없다. 어린 놈이 운영하는 숙소인데 어린 놈이 돈맛만 알아서 서비스는 정말 개판이다. 마트의 물가가 싸서 기분이 좋았는데 그런 기분이 다 잡쳐졌다.
어쩌다가 이런 숙소를 예약하게 되었는지 참 한심하다. 아마 싼 놈을 찾다가 걸린 모양인데 결국 취소하게 되면서 비용이 더 들게 생겼으니 절약되는 게 아니다. 내 살아오는 방식이 늘 그랬다. 가성비만 늘 따지다 보니 이런 식으로 이중부담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치자 하면서도 참 고쳐지지 않는데 이번 일이 좋은 계기가 되면 정말 좋겠다.
급히 Airbnb를 뒤져서 2km남짓 떨어진 곳 숙소를 예약하고 이 숙소의 남은 기간을 취소하니 160만 돌려준다. 이래저래 손해가 많다. 빵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비가 부슬거리는 바르샤바 시내를 관광삼아 걸어가서 새 숙소에 간다. 가는 길에 마트가 있어 들어가보니 체리가 정말 싸고 오겹살도 좋은 놈들이 많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될 테니 걱정이다. 3시에 체크인인데 좀 일찍 가능하겠냐니 노력해보겠다고 해서 1시 경에 도착하니 청소 중이다. 짐을 두고 점심을 먹으러 비가 그치지 않는 시내로 비를 맞으며 다시 나온다.
마눌님이 블로그에서 찾아본 Zapiecek. 약 3km 거리인데 비가 오는데도 원망스럽게도 마눌님은 걸어가잔다. 가다보니 바닥에 체리가 떨어져 있어 왠일인가 했더니 체리가 익어서 저절로 떨어지는 체리나무가 길가에 있네. 체리 1kg에 비싼 게 10즐로티, 약 3천원이니 이 정도면 횡재다. 가는 길에 우연히 시장을 발견하고 구경을 잘 한다. 채소가게, 정육점 등이 매우 많고 화덕에서 빵을 바로 구워내는 빵집은 정말 먹음직스럽다. 북유럽에는 대형마트들이 골목골목마다 있어서 이제 시장은 거의 사라진 것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여기 오니 이런 전통시장이 있네. 물건을 사기에는 그래도 카드결제가 되는 대형마트가 우리에게는 편리해서 이 시장의 물건을 살 수 있을지 의문이기는 하다.
Zapiecek 식당. 바르샤바 곳곳에 이 식당이 있는데 우리는 본점(?)까지 찾아가느라 힘들었다. 입구에서 반기는 전통복장의 종업원들이 예쁘다. 우선 골롱카(학센같은 족발요리)와 이 집의 자랑이라는 만두도 주문한다. 만두는 그저그런데 골롱카는 맛있고 특히 곁들여진 양배추(?) 볶음이 좋다. 처음 주문한 맥주가 밀맥주라 필스너로 맥주를 하나더 주문. 그런데 모두 3만 원밖에 안 된다. 한국보다 훨씬 싼 가격이 놀라울 뿐이다.
도시가 매우 깨끗해 보인다. 건물들은 옛 건물과 최신식 건물이 혼재되어 따로 구시가라는 게 없어보이기도 한데 그건 내일 돌아다니면서 알게 되겠지. 새로운 건물들의 디자인이 매우 독특해서 보는 눈이 즐겁다. 2차대전 때 독일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는데 내일 돌아다니며 그 실상을 보게 될까? 몇십 년이 지난 일이라 흔적을 찾기 힘들 것이다. 돌아올 때는 버스. 짧은 구간이라 2인에 6.8즐로티.
마트에 들러 제사장을 본다. 생선 3종, 사과와 자몽 각1, 나물거리 등으로 제사상를 푸짐하게 본다. 모처럼 무우가 보여서 탕수국은 소고기무우국으로 끓였는데 맛이 나질 않는다. 술은 칠레산 와인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많이 놀라시겠군. 뭐, 외국에서 모시는 게 벌써 몇 번째이니 혹시 내년에는 어디로 오라고 그럴까 궁금해 하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소고기전도 부치고 해서 제사를 모시는데 좀 울컥하는 듯 하다. 이런 일은 없었는데 내가 많이 늙은 걸까? 그냥 객지라서 그런 걸까?
방문을 다 열어도 벌레가 없다. 수건을 달랑 2장만 줘서 더 달라니 세탁비를 내야 한다는 어이없는 주인놈. 3박4일 동안에 수건을 한 장만 쓰라니 정말 기막힌다. 집은 좋은데 주인놈이 개판이네. 물가가 싸서 정말 좋은 이 폴란드가 인간들 때문에 싫어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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