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66 쇼팽과 함께 한 하루

나쁜카카오 2018. 11. 16. 17:41

오늘은 쇼팽과 하루를 보내는 날. 밥과 소고기국 등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투어 출발장소인 문화와과학궁전으로 간다. 나오다보니 카메라를 두고오네. 다시 가기도 귀찮고, 잘 찍히지도 않는 카메라가 무겁기만 해서 그냥 가기로 한다. 혹시 트램이 카드 결제가 되나 했더니 역시 안 돼서 2정거장만 타고 내려서 걷는다. 가다보니 첫날 밤 우리가 헤맸던 네거리가 나오네.


닷새 만에 처음으로 가까이 가본 이 궁전. 참 못 생겨서 마치 괴물같다. 주변에 즐비한 최신 고층건물들과도 어울리지 않아  스탈린의 선물이라는 이유말고도 이 동네 사람이 싫어하는 까닭을 짐작하겠다. 예술감각이 매우 뛰어난 러시아인데 공산독재체제가 되면 건물도 괴물이 되나보다. 그렇게 싫으면 해체 후 축소 복원해서 외곽에 두면 되지 않나? 역사의 교훈이란 이유로 이런 흉물을 도시 가운데 두고 도시의 랜드 마크가 되게 하는 것도 매우 어리석다는 생각이다.


쇼팽 생가 동네는 약 60여km 떨어진 Sochaszew 조금 못 미친 Zrlazowej Woli. 여기 말은 참 읽기 힘들다. 5명이 탄 8인승 승합차는 규정속도를 잘 지켜서 1시간 반이 걸린다. 도시를 벗어나면 금방 시골인데 산이 없는 나라라 사방이 벌판이다. 시골 마을도 그리 가난한 사람이 있어 보이지 않는데 땅이 넓은 덕분일까? 나무가 많아 멀리 보이지는 않는데 참 심심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는 않겠지. 기차를 타고 올 수도 있겠는데 싶기만 했다. 

매우 넓은 정원 속에 하얗고 작은 집, 방 5개 정도의 쇼팽 생가는 그냥 그렇다. 이걸 보려고 들이는 시간과 돈이 좀 아깝기는 하니 시간이 촉박한 여행자는 도저히 올 수 없는 곳이네. 수요일에는 무료 입장이라 20즐로티씩 번다. 왜 수요일이냐고? 모른다. 쇼팽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투어 자체는 좀 실망스럽다. 생가 내부를 두 번쯤 둘러보고 쇼팽이 흘러나오는 넓은 정원에서 거닐어도 보고 해도 시간이 널널하다. 






점심은 생가를 조성하면서 최신식 디자인으로 꾸민 건물의 식당에서 스프와 만두. 만두도 그저 그렇고 맥주가 시내보다 싼데 날이 덥지 않으니 맛이 없다. 왜 맛있는 음식은 없는 것이냐...


패키지 팀들이 여럿 와서는 식당과 주변 기념품점에 돈을 보태주네. 점심 이후에 우리도 싼 아이스크림(3즐로티)과 마그넷 하나를 사고 정원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2시 약속시간에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온다. 차를 타고는 계속 졸았다. 올 때는 1시간 10분 걸린다.

중앙역 상가에 들어가는데 마침 한국 장애인 펜싱팀이 경기참가차 와서 잠시 대화를 나눈다. 감독 녀석이 괜히 퉁퉁거리는 것 같다는 건 내 과민반응일 터. 이 동네 특산인 산양크림을 잔뜩 사서 현숙의 부담을 덜고, 쇼팽 박물관을 찾아간다. 날이 더워서 햇볕 아래는 뜨거워 약 2km 거리가 멀고 힘들다.

하얀 색(그러고보니 쇼팽 생가도 흰색이다) 건물. 입장권 카드로 입장과 내부의 각종 멀티미디어 장치들을 사용하게 하는데 시간이 많으면 하루종일 여기서 죽쳐도 되겠다 싶기도 했지만, 쉬는 시설이 불편해서 오래 있기는 힘들겠다. 쇼팽 음악을 느긋하게 즐기게 하는 장치는 참 부럽다.


6시 연주회는 구시가에서 있으니 다시 구시가로 걸어가야 한다. 왼쪽 무릎이 가끔 시큰거리지만 참 잘도 걷는다. 다시 쇼팽 심장의 성당도, 대통령궁도, 구시가 입구의 넓은 광장도 지난다. 코페르니쿠스 박물관은 외관만으로 만족키로 하고, 마리 퀴리 생가는 찾지 못해 빼먹는다. 


이제 배가 고프다. 연주회가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하니 끝날 때까지 버티지 못 하겠다 싶어 길거리에서 와플과 치즈빵을 산다. 와플은 금방 나오는데 빵은 10분이나 기다리게 해서 입장시간에 늦을까봐 가슴을 졸인다. 늦게 나온 만큼 맛있는 빵을 급하게 먹고 연주회장으로 들어간다. 약 5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 그랜드피아노 하나로 장사를 잘도 한다. 

연주는 괜찮았다. 젊은 여자 피아니스트가 너무 힘이 넘친다는 느낌은 주지만 곡의 성격이 그러니 어쩔 수 없겠지 한다. 중간에 어떤 녀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안다박수를 치더니 나중에는 끝나도 박수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연주자가 좀 머쓱했겠다. 쇼팽 곡을 다 아는 사람이 이런 연주회에 오겠어? 그러니 이런 곳에서는 연주자가 적당한 신호를 줘야 하는데 그게 싫으면 박수 없이 다음 곡으로 넘어가야지.


30분 연주하고는 인터미션. 와인과 쥬스를 주면서 CD도 홍보하네. 80즐로티면 좀 비싼 느낌인데 사는 사람이 많아서 의아하기도 하다. 허니 와인은 맛이 별로인데 심심해서 두 잔을 마신다. 연주회는 인터미션 포함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마지막으로 구시가 시장광장의 인어동상 사진을 찍으러 가니 마침 신혼부부의 웨딩 촬영이 있어서 재밌다. 쇼팽 생가에서도 웨딩 촬영을 하던데 여기서는 신랑 녀석이 좀 뚱한 표정이라고 느낀 건 왤까?


바르샤바의 야경이 별 볼 게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관광의 꽃인 도시야경을 생략하려니 좀 아까워서 마눌님에게 계속 물었는데 별로 아까워하지 않아 그냥 버스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시간이 애매하기도 했고 냉장고에 든 오겹살을 마저 처치해야 하기도 했다. 동네에 도착해 체리를 사고 마트에서 맥주도 한 병 더 보충해서 바르샤바의 마지막 밤을 즐긴다. 여기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물가가 무서워 피난하다시피 온 바르샤바가 단지 싼 물가뿐만 아니라 볼거리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네. 여자아이들은 정말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