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하늘엔 구름이 조금 있더니 금방 하늘이 갠다. 베르겐을 떠난 이후론 날씨가 계속 좋다 했는데 어제 비가 왔지. 제사모시고 남은 음식으로 아침을 거하게 먹고 느긋하게 오전의 여유를 즐기다가 12시에 숙소를 떠나 관광에 나선다. 오늘 목적지는 구시가.
가까운 유대인 역사박물관은 건물이 매우 슬프다는 느낌이다. 아마 폴란드 유대인들이 히틀러 시절에 겪은 고난과 관련한 선입견 탓이겠지. 그냥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픈데, 돈까지 줘가면서 더 마음을 아파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공짜면 봐줄 참이었는데 마침 쉬는 날이다. 나중에 마눌님이 확인한 바로는 히틀러가 폴란드 거주 유대인 약 3백만 명 거의 전부를 죽였다는데, 참으로 엄청난 숫자다. 생각하면 할수록 히틀러는 나쁜 놈이다. 아니 악마다. 폴란드 사람들은 아우슈비츠란 이름을 싫어한다.
폴란드는 레흐 바웬사를 떠올리게 하는데 한동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 잊어버리기.
구시가 쪽으로 방향을 잡고 슬슬 걸어가는데 공원이 참으로 많은 도시네. 폴란드, 면적은 남한의 3배가 넘지만 인구는 3800만명 정도. 바르샤바는 서울보다 크지만 인구는 200만이 안 되니 곳곳의 공원이 부러울 만 하다.
바르샤바는 독일에 의해 철처히 도시의 85% 정도가 파괴되었지만 '벽돌 1장까지 고증을 거쳐 복원된 도시'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복구되어 구시가는 전체가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네.
일단 Zamkowy 광장이 목표인데 가다보면 나오겠지 했던, 어제 무심결에 지나쳤던 시장 동네는 찾지 못 하고 대통령궁 근처의 넓은 광장을 먼저 만난다. 제라늄으로 예쁘게 장식된 무명용사의 묘를 지나 구시가로 방향을 잡는다.
현지화를 좀 찾으려고 은행 ATM에 갔다가 선글라스를 또 두고 오는 짓을 하네. 구시가는 근처에 있어 쉽게 찾는다.
바르샤바는 복원된 도시라 현대 건축물과 옛 건축물이 뒤섞여 있다는 느낌인데,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는 섞이지 않도록 잘 복원했다는 느낌. 중세의 구시가가 아닌, 1950년대에 복원된 구시가... 재밌다. 하지만 구시가는 옛 것이든 새 것이든 어디나 마찬가지로 기념품과 식당의 나라지. 여기에도 넓은 광장이 있고 구시가 안으로 들어가면 또 광장이 있다. 광장이 많다는 건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많다는 것이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걸 싫어하는 나라도 많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면서 구걸하는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매우 많아서 좀 슬프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의 앵벌이가 사라진 게 그리 오랜 옛날 일은 아니었다. 물가가 한국의 반 정도이니 우리의 70년대 정도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니 구시가에 대한 감흥도 그리 크지 않다.
식당들이 사방을 둘러싼 중앙광장에는 칼과 방패를 치켜든 무서운 인어상도 있다. 복원된 구시가는 바비칸 성벽으로 신시가지와 구분되어 성벽에서 잠시 쉰다. 도시 관광은 늘 힘들다.
배는 고픈데 시장을 찾아서 식사를 해결하자는 마눌님을 따라 열심히 다니다 보니 시장은 보이지 않고 배는 점점 고프다. 그래서 눈에 띄는 아무 식당에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그중 손님이 없어 한가한 식당을 골랐네. 그냥 나오면 될 걸 굳이 앉아서 주문하는 건 내 얼굴이 너무 얇는 탓이다. 이럴 일은 아닌데도 이 얇은 얼굴가죽을 어찌 하지 못 하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지.
맛없는 스테이크와 마눌님이 좋아하는, 수프담긴 빵. 식당의 규모는 매우 커보이는데 맛은 없고 주인 녀석도 퉁명스럽게만 보이면서 술값만 Zapiecek보다 싼 Barbakan. 다음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다시 기운을 차려 쇼팽의 심장이 묻혀 있다는 성당을 찾아가는 중에 대통령궁 앞을 지나는데 4-50명 정도가 모여 시위를 한다. 무슨 내용인지 당연히 모른다. 마침 한국인 관광객 한 팀에게 한국인 가이드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군. 대로변에 붙은 대통령궁.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지키는 보초도 엄숙하지 않다.
인구의 95%가 카톨릭 신자이고 1978년에 선출되어 2005년 죽을 때까지 자리를 지킨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이 나라 출신인 폴란드. 구시가를 포함한 도시 전체에 성당이 무지무지 많다. 쇼팽의 심장이 묻혔다는 성당을 찾아 모처럼 성당 안에 들어간다. 묻힌 심장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 하지만 쇼팽의 사진이 걸려서 이곳이 그곳인가보다 하고 나온다.
성당 옆과 몇몇 곳에는 피아노 의자가 있어서 쇼팽을 들을 수 있다. 물론 피아노가 아니고, 돌의자에 소리가 나게 해둔 것이지만 쇼팽 등 자국의 유명 음악가를 이렇게 기억하는 방법도 있구니 싶어서 폴란드가 좋아진다.
이제는 돌아가야지. 가다가 그 시장을 찾아서 빵도 사야지 했는데 폰 배터리가 달랑거려서 가는 길을 확인할 수 없어 느낌으로 길을 다니니 찾을 수가 없다. 어느 옛 왕족의 장원에서 공원으로 바뀐 공원을 지나니 금방 숙소 부근이다. 화덕에서 바로 구워내는 그 빵이 참 맛있어 보였는데 아깝다.
마트에 들러 오겹살 1kg(약 6천원), 맥주 500 2병(하나는 세일해서 2.1즐로티, 하나는 7도 짜리), 기타 채소를 사서 저녁거리를 장만한다. 오겹살을 구워 7도 맥주를 비우니 하루의 피곤이 취기와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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