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69 쉐락볼튼

나쁜카카오 2018. 11. 19. 11:37

4시에 잠이 깬다. 하늘은 맑고 어제 거세게 불어닥치던 바람은 잠잠해졌다. 아침에 산책을 하면서 Forsand가는 페리를 알아보니 뱃삯이 너무 비싸다. 1300NOK정도네. 그래서 오늘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바로 프레이케스톨렌으로 출발할까 했는데 마눌님의 만류로 마음을 바꾼다. 어쨌든 내일 다시 산으로 올라가서 육로로 프레이케스톨렌으로 갈 것이다. 리세피요르드가 내 생각에는 송네피요르드보다 예뻐서 배로 지나가며 위를 보면 경치가 좋겠다 싶지만 비용이 너무 크고, 경치는 산에서 보면 된다.


라면과 누룽지로 아침을 간단하게 해치우고 고갯길을 올라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료가 250이네. 싼 편이지? 트롤퉁가는 기본이 500에 더하기 100이었는데. 주차장 관리인 녀석이 한국차를 보고 매우 반가워한다. 

쉐락볼튼까지 4.9km, 2시간이면 갈 텐데 경치가 그냥 놔두질 않겠지. 주차장 고도는 670, 캠핑장에서 여기까지 7km. 쉐락볼튼은 1030 정도이고 가는 길에서 가장 높은 곳은 1060 정도다.

처음부터 가파르게 바윗길을 올라 고개에 서니 고개가 앞에 또 하나 보인다. 그리 힘들지는 않다. 곳곳에 아직 녹지 않은 눈과 바위,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풀들. 매우 황량한 경치라 쉐락볼튼이 아니면 절대로 오지 않을 곳이겠지? 두 번째 고개를 올라서서 앞을 보니 거의 평탄한 고원지대가 형성되어 있어 길은 더욱 편할 것 같다. 


눈 위에서 놀기도 하며 재밌게 가다보니 쉐락볼튼이 금방이다. 여기서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데, 트롤퉁가가 그러더니 여기서도 신통하게도 사진찍는 장소가 나온다. 예상보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사진찍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아 순서가 금방 돌아온다. 마눌님이 갔다와서는 겁이 좀 났다네.

리세피요르드의 이 쉐락볼튼 사진을 보고 여기 반드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게 노르웨이 여행의 발단인데, 막상 달걀바위 건너가는 길을 보니 겁이 덜컥 난다. 운동화를 신고도 올라가 사진을 찍는데 나는 왜 겁이 나서 올라가지 못 하나 싶어 좀 억울하기도 하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여기에 왔고 내 눈으로 확인했으며 사진을 남겼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건너 편에 보니 프레이케스톨렌 비슷한 바위가 또 한 덩어리 있다. 그런데 보기만 해도 무서워서 내일 프로이켄스톨렌을 어떻게 하나 좀 걱정이 벌써 된다. 정말 기막힌 절벽들이라 할말이 없다.

사진을 다 찍고 주차장 녀석이 알려준, 더 멋진 경치를 찾아 주변으로 다녀보니 경치는 오히려 그 주변이 더 낫다. 깍아지른 절벽들과 피요르드의 푸른 물. 하늘마저 오늘은 맑게 개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의 경치가 연출된다. 어떻게 이런 지형이 있을 수 있는지... 




바다로 바로 빠지는 직벽의 높이가 보통 1,000m 정도이니 이런 경치를 어디서 볼 것이냐. 미국 자이온 캐년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런 지형이 이렇게 연속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싶다. 산들의 정상은 거의 평평한 고원인데 피요르드 건너편의 산들도 다 그렇다. 로포텐 주변을 제외하고는 날카로운 꼭대기는 거의 보이지 않는구나. 그런데 그 직벽들이 주는 공포감이 점점 더 심해진다. 마눌님은 끄트머리에 앉아 사진을 잘도 찍는데 나는 볼수록 무서워져서 절벽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피해다닐 정도다.

한국에서 혼자 여행왔다는 젊은 아이의 달걀바위 사진을 좀더 잘 찍을 수 있었는데 녀석이 빨리 자리를 뜨는 통에 제대로 찍지 못한 것 같아 좀 민망하다. 아직 대학생이 듯 한데 혼자서 노르웨이까지 여행할 수 있는 여유가 매우 부럽다. 우리는 그런 여유를 절대로 가질 수 없었지. 녀석이 프로이케스톨렌은 그냥 장난이라네.

돌아오는 길은 힘들다. 쉬엄쉬엄 돌아와 주차장에는 4시 30분 도착. 기막힌 자리에 자리잡은 카페에서 비싼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는다. 

주차장을 떠나면서 관리인 녀석과 사진도 한장 기념한다. 마눌님이 녀석과 찍은 사진은 녀석의 폰으로 찍어 내일 떠나면서 다시 찍기로 했는데 가능하겠지?

텐트로 돌아와 맥주 2캔으로 피로를 푸는 사이에 마눌님은 잠시 눈을 붙인다. 저녁은 감자와 양파로 전을 붙여 때운다. 드디어 감자로 한 끼를 때우는 데까지 왔다. 참으로 시원찮은 샤워장에서 힘들게 샤워하고 일찍 잔다.

깜빡하고 쉐락볼튼 다녀오는 7시간 동안 냉장고를 연결해뒀구나. 그런데 시동이 잘 걸리네. 괜찮은 거지만 자주 해서는 안될 일이지.


여기 사람들은 어른 어이 할 것 없이 훌러덩 벗는 걸 예사로 알아서 어디서든 상체는 잘 벗는다. 여자들도 아무데서나 비키니 차림을 예사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