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87 스톡홀름 - 룬드 - 트렐레보리 642km

나쁜카카오 2018. 11. 26. 15:11

역시 아침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다. 이러다가 오후에는 또 구름이 몰려와서 하늘을 덮지. 참 신통하지.

푹 고은 소뼈고기국으로 아침을 잘 먹고 출발 준비를 한다. 우수리스크에서 사온 쌀 18kg 마지막 봉지를 뜯는다. 입이 늘어나니 쌀이 빨리 떨어지네. 

4일 동안 잘 지냈는데 뭘 하고 보냈는지 모를 정도다. 처음부터 핸들을 넘기고 경치랄 게 별로 없으니 뒷좌석에서 잠이나 잔다. 한참 자다보니 옌셰핑 부근에 왔는데 Vattern 호수가 보인다. 지도를 보니 폭은 좁은데 길이가 엄청나게 길어 100km도 넘을 것 같다. 호수 안의 섬도 호수를 닮아 길고 길다. 기름을 좀 넣고 점심은 어제에 이어 또 버거킹 똑같은 메뉴.


한참을 더 달리다가 핸들을 넘겨 받는다. 시간이 많이 남아 일찍 도착해서 헤매는 것보다 중간에 적당히 즐길 거리나 국도의 풍경을 즐겨보자는 생각이 들어 고속도로를 벗어난다. 시골길로 들어서니 시원하게 쭉쭉 뻗은 나무들이 만든 울창한 숲 그늘이 참 좋다. 처음으로 사고 현장을 목격한다. 추돌이나 충돌사고인가 했더니 차 한 대만 길옆 밭에 빠져 있는 걸 보니 그건 아닌가 본데 경찰차랑 구급차들이 많이 몰려있다. 

국도로 계속 달리다 보니 룬드(Lund)가 나온다. 말뫼에서 베스테르비크로 갈 때 지나쳤던 도시. 길 바닥이 자갈길이라 여기도 중세 도시 중의 하나이려니 했는데 의외로 매우 유서깊은 도시네. 스웨덴 최고의 대학이 있어 인구의 40%가 학생이고 1100년 대에 지었다는 성당 등등이 있다. 조그만 중국집도 하나 있는데 북경면이라면서 짜장면도 판다. 그림으로는 우리 짜장면하고 똑같이 생겨서 시식을 해보고도 싶었지만 스웨덴에서 중국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아 참는다. 생각해보니 시간도 널널한데 나름 역사가 오랜 이 도시를 찬찬히 둘러보아도 되는데 왜 그리 빨리 빠져나왔는지 좀 아쉽다. 핑계는 주차다.


트렐레보리까지도 계속 국도로 달린다. 길이 참 좋아서 트렐레보리가 매우 큰 항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상 도착해보니 그리 큰 도시는 아니고 항구만 분주한 것 같다. 

터미널 위치를 확인한 후에 마트에 들린다. 독일 물가를 잘 모르지만 쌀은 스웨덴이 싼 것 같아 마트에서 쌀 1kg만 사본다. 송이버섯도 추가. 북유럽의 마지막 저녁을 비슷하게나마 북유럽풍으로 먹어보자 하고 찾아간 식당이 피자다. 나는 케밥을 주문했는데 고기맛이 너무 없다. 피자는 맛있어서 둘이서 잘도 먹는데 맛없는 케밥은 반도 먹지 못 했다. 북유럽의 주된 음식이 뭔지 모르고 북유럽이 끝나네. 버거? 케밥? 피자? 모두 외래 음식인데, 굳이 찾자면 스테이크와 오픈샌드위치 정도?


10시 반 출발인 배를 타러 9시에 터미널에 들어가니 그 시간에도 기다리는 차들이 많다. 10시쯤 Tom Sawyer(뜽금없다)호 2층 입구를 통해 배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가는 차가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이는데 스웨덴 차가 많이 보이네. 5층

입구로 들어가니 바로 상점이 보이는데 여기는 규모도 작고 가격도 비싸다. 선실은 4층. 들어가니 아뿔싸 침대가 2층 침대 하나밖에 없고 소파같은 의자만 있네. 2층 침대가 2개니 다른 놈이 하나 더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참 어이가 없다. 아마 내가 예약하면서 이렇게 예약했을 텐데 전혀 기억에는 없다. 어쨌든 그래서 친구는 매트를 깔고 바닥에서 자기로 한다. 좀 미안하네.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이 딸렸고 선창이 있어 좋은데 창유리가 지저분해서 밖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 밤이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선창이 별로 의미가 없긴 하다. 2명이 자면 딱 좋은 공간이다.

다른 층과 갑판 등을 다녀보니 선실 외에는 별다른 좌석이 없어 아무 곳에서나 자리를 펴고 밤을 보낼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날씨가 춥지 않아서 갑판에서도 충분히 잘 수 있긴 하겠다. 식당 의자도 이 사람들 몫인데 의자에서 밤을 보내기는 좀 불편하지. 특이하게도 흡연실이 있네.


차에서 가져온 맥주 4캔으로 북유럽의 마지막 밤을 기념한다. 러시아 29일, 북유럽 60일. 참 오래도 다닌다. 스칸디나비아 3국에 덴마크와 아이슬란드까지 5개국이 북유럽 연합 비슷한 걸 만들어서 국기 그림도 모두 십자형태에 색깔만 다르다. 인구들이 모두 그만그만한데 현재 이 동네의 강자답게 스웨덴만 인구가 천만에 육박한다. 산과 피요르드가 있는 노르웨이에만 경치랄 게 있고 다른 나라들은 그저그런 평원들로 인해 나무만 많다. 스웨덴의 산들은 노르웨이와 접경지역에 좀 있는데 접근성도 떨어지고 개발도 되지 않아 겨우 아비스코국립공원 정도만 볼 만하다. 스웨덴은 다른 자원이 많아서인지 굳이 산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의지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1년 중 거의 절반이 깜깜한 어둠에 묻히는 북유럽.

땅은 넓고 인구는 적어 매우 쾌적하고 여유있는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지만 그만큼 심심하기도 한 나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