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89 베를린 - 호프 355km

나쁜카카오 2018. 11. 27. 12:35

누룽지를 끓이고 어제 싸온 학센과 사우어크라프트를 양송이와 볶아 아침을 잘 먹는다. 아침에 보니 캠핑장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바로 옆에는 조그만 개울이 흐르지만 경치가 그리 좋지는 않은데 여기서도 카누나 카약 등을 타는 사람이 있네.

베를린 관광은 어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와 브란데부르크 문을 보는 것으로 끝내기로 한다. 시간이 있으면 한 이틀 정도 머무르며 포츠담에도 가보고 할 텐데, 돌로미티가 바쁘다. 오늘 갈 길은 300km 정도이니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가는 길에 아시아 마트를 찾아 고추장 등을 사기로 하고 동쪽에 있는 아사이마켓 아띠를 찾아가니 주인이 한국 사람이고 쾌활하게 수다를 떤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눌님이 혹시 엔진 오일을 갈 수 있는 곳을 알 수 있을까 하고 물어보니 마침 아는 사람이 있다며 전화해서 가능하다며 주소를 알려준다. 정비공장에 전화하니 1시까지 오면 된다고 해서 어제 들렀던 다시 기아서비스에 가서 오일 필터와 에어 크리너를 사서 정비공장에 간다. 

28살 젊은 진주 출신 친구가 독일에서 마이스터를 따려고 일을 하고 있다네. 기특하다. 엔진오일을 가는 중에 보니 돌에 맞아 아주 작은 구멍이 난 앞 유리에 금이 길게 자라서 얼마 버티지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는 어떻게 조치가 불가능하다. 앞으로 1달을 버텨달라고 바라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 머리가 지끈거린다. 만일 가는 중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해서 경로 중의 모처에 유리를 준비해 두라고 기아에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비용이 만만찮겠지?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앞 유리가 깨진 채로 운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시 기아서비스에 가서 잘못 산 에어컨 필터는 환불처리한다. 베를린 시내를 아주 휘젓고 다니는구나. 대금은 내 계좌로 보내준다네. 유리(이들은 windshield라 부른다)는 우리가 수락만 하면 이틀 이내에 준비할 수 있고 비용은 1,200유로다. 이 많은 돈을 내고 여기서 갈아야 하나? 일단 응급조치 후에 문제가 지속되면 다음 주까지 이 베를린 서비스 센터로 연락해서 처리하기로 하는데, 만일 여기서 교체한다면 다시 베를린에 와야 한다는 문제도 만만찮다. 여기서 가능하다면 독일 또는 유럽의 다른 지역 서비스 센터에서도 가능하다는 말도 되겠지?

센터를 나와서 리들에 들러 점심용 빵과 우유를 사서 주차장에서 끼니를 때운 시간이 4시다. 긴장되고 커피를 많이 마신 탓인지 배고픈 것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간 지나치면서 궁금해 하기만 했던 바우하우스에 들러보니 각종 건축관련 자재와 가정 설비 자재 등의 규모와 다양한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참으로 놀랍고 부러운 물건도 많은데 부러워하기만 해야지 달리 방법은 없네.


UHU 브랜드의 유리전용 접착제 30g 짜리 2개와, 비싸서 사지 않았던 투명테이프도 할수없이 사서 일단 응급조치를 해본다. 만일 이 놈으로 버텨주면 러시아를 통과할 것이고, 안 되면 차는 배로 실어 보낼 것인데, 그렇다면 다시 독일 브레머하펜까지 또 올라와야 하니 그 문제도 보통은 아니다. 브레머하펜까지 유리가 버텨준다는 보장도 없다.

라이프찌히를 외곽으로 통과하고 나니 풍력발전기가 거의 숲을 이룬다. 잡초같다는 현숙의 표현이 오히려 적절하네.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해가 황홀한 노을을 보여주는데 차를 세울 곳이 없어 그냥 차에서만 보고 사진도 찍어본다.


Hof 동네에 들어서니 조그만 시골 동네인 줄만 알았던 게 잘못된 거다. 제법 규모가 커보이는 놀이공원 놀이기구들의 조명이 예쁘다. 우리나라 읍 정도의 규모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밤이라 잘 알 수는 없다. 그러고보니 밤에 차를 타고 다니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집은 쉽게 찾는데 주차할 곳이 없네. 주변 도로 아무 곳이나에 주차하라는 주인놈의 성의없는 안내도 불쾌하다. 부엌 찬장에 붙은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거의 암호를 해독하는 수준이다. 잘 쓰지도 못하는 손글씨로 괴발새발 갈겨둔 글자는 추가로 문자를 받고서야 겨우 해결된다. 집은 주인놈이 살면서 내놓는 것인지 살고 있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술도 무수히 많은데 도대체 이 놈들은 무슨 돈으로 술을 이렇게 사재놓고 사는지 참 이해하기 어렵다. 음악을 하는 놈인지 금관악기 두어 종류와 LP판도 많이 쟁여놓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