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91 돌로미티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나쁜카카오 2018. 11. 27. 21:05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가니 주인 여자가 나온다. 아직 젊어보이는데 매우 쾌활해서 좋다. 여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말밖에 할 줄 모르고 나는 영어밖에 안 되니 구글 번역기로 떠듬떠듬 대화를 해본다. 내일 하루 더 지낼 수 있냐고 물어보니 2층에 올라가 남편을 데리고 내려와서 가능하다네. 50유로를 바로 지불하고 방에 들어와 날씨를 보니 내일은 뇌우가 친단다. 좀 알아보고 연장할 걸 그랬다며 마눌님이 타박이다. 그 말은 맞다. 비가 오면 3개월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짐 정리나 하고 지내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베로나 airbnb는 취소하니 반값만 돌려주네.

생선을 굽고 소시지도 버섯과 볶아 아침을 해결한다.


트레 치메를 찾아 길을 나선다. 숙소 동네를 벗어나면서부터 경치는 기가 막힌다. 어제 그렇게 비가 오더니 그 덕분에 대기가 더욱 맑아지나 했는데 대기 중에 습기가 남아 사방을 둘러싼 뾰족 산들이 그리 또렷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경치는 환상적이다.

아침 시간이라 좀 한가한 길을 따라 호수 동네 Alleghe 구경도 하며 열심히 달리면서 곳곳의 경치를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차를 세운다. 당초 목표는 오늘 동쪽 트레 치메와 서쪽 세체다를 다 보기로 했는데, 그래서 트레 치메에는 1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참으로 돌로미티를 모르는 무식한 계획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길은 엄청난 꼬불길로 고개를 올라간다. 구비마다 숫자판이 있어서 뭔가 했더니 구비횟수를 적어둔 것인데, 고개 끝에 29를 찍는다. Passo Giau.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차와 오토바이들이 가득인제 자전거도 많다. 어렵사리 차를 세우고 고개에 올라보니 세상에 이런 경치가 있다. 황홀해서 눈물이 날 정도의 경치에 정말 할 말을 잊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지는 이제 관심이 없고 오직 경치를 담는 데만 열중이다.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대피소 역할을 하는 고갯마루 식당도 있고 화장실도 있는데 이런 젠장, 1유로나 달라네. 참기로 한다. 가다보면 답이 나오겠지. 가기 싫어하는 마눌님을 달래서 목적지를 향해 겨우 길을 떠난다.

코르티나 담페초에 도착하니 지금까지 오면서 봐왔던 수많은 관광지 동네와 똑 같네. 꽃들로 예쁘게 단장한 식당과 호텔, 기념품점 그리고 수많은 관광객들. 시간이 2시가 지났으니 점심을 먹어야지. 코르티나 문자가 새겨진 다리 아래에 어렵게 주차를 하고 바로 앞 일 폰테 식당에서 피자로 점심을 맛있게 먹는다. 깔조네 피자 하나를 혼자서 다먹기는 아마 처음인 듯. 먹고 나와 차를 움직이니 주차장 차단기가 내려진다. 이런 젠장. 식당에 가서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열어주네. 식당 놈들이 관리하는 게 분명한데 자기 식당에서 밥먹은 손님에게 이럴 수도 있는 건가? 


아우론조 산장으로 가는 길을 잠시 헤매다 다시 꼬불길을 열심히 올라 해발 2300의 산장 바로 앞에 주차한다. 해발 3천의 봉우리 3개가 나란히 선 트레치메 데 라바레도. 그 자락을 따라가는 트레일은 저멀리 빙 돈다. 그 끝까지는 가보기로 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평한 산책로를 뾰족 봉우리 천지인 온 사방을 정신없이 바라보며 걷는다. 나무는 없고 제 세상을 만난 야생화들이 마눌님의 혼을 쏙 빼는구나. 트레일 구비를 돌아서니 그곳에도 산장이 있다. 매우 가까운 거리 곳곳에 산장이 있어 며칠을 두고 트레킹을 해도 충분하겠다 싶다. 일단 올라오기만 하면 트레일은 편한 편이고 식당을 겸한 산장이 가까운 거리 곳곳에 있어 그냥 걸으며 즐기기만 하면 되게 생겨서 참 좋겠다.


산장 위에 고개가 있어 올라본다. 여기는 2454. 오르면 또 다른 경치가 혼을 빼니 정말 기가 막힌다. 여기서도 저 건너 또 다른 산장이 눈에 보인다. 정신줄을 챙겨서 내려온다. 떠나기 전에 마눌님은 아우론조 산장에 들어가 산장 내부를 보고와서는 시설이 좋다며 감탄한다. 돌로미티의 이런 산장에서 자볼 기회가 생길까?










아래를 보니 저 멀리 호수를 낀 동네가 있다. 그런데 방향이 달라서 그곳에 가보고 싶어하는 마눌님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어 아쉽다. 가도 되기는 하련만 이 동네 꼬불길이 지겨워서 가게 되지를 않는구나.


돌아올 때는 핸들을 넘기고 편하게 온다. 오면서 다시 지아우 고개에 올라서니 올 때보다는 감흥이 덜 하다. 뭐든지 두 번째는 늘 그렇다. 올 때 들리지 못 한 호수 Durrensee에서도 좀 놀고 하면서 느긋하게 돌아와 생선을 튀기고 굽고 해서 저녁을 잘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