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33 마그다가치 - 노보부레이스키 580km

나쁜카카오 2018. 12. 3. 17:04

누룽지국을 끓여 아침을 잘 먹고 차에 가니 또 배터리가 방전됐다. 이제는 냉장저장할 것도 별로 없는 냉장고 전원을 뽑지 않아 생긴 불상사. 그래도 전에는 하룻밤 정도는 버텨줬는데, 이제는 그게 안 되는구나. 이러면 배터리 성능이 많이 떨어졌다는 이야기인데, 국내에서는 여전히 쓸 수 있기는 하겠지? 그래도 모른다. 다가올 겨울에 시동이 걸리지 않을 경우가 많을 수도 있으니 돌아가면 배터리를 바꾸어야겠다. 어쨌든 지금은 시동을 걸어야 집에 돌아가서 배터리를 바꾸든 어떻든 하지. 주인여자에게 전원을 물어보니 3층 건조실을 알려준다. 바깥은 바람이 많이 불어 매우 춥다. 전원을 연결하고 최소한 2시간 정도는 기다리자 하며 일단 느긋하게 시간을 잡는다. 9시가 다 되었으니 빨라도 11시 반에나 나가겠다. 오늘도 거리가 짧아 저녁에 일찍 도착하면 뭐하고 노나 했던 걱정은 또 기우가 된다.

1시간쯤 지나 나가보니 충전이 거의 되지 않았다. 할수없이 또 주인여자에게 배터리 연결할 곳이 없냐고 도움을 청한다. 여자는 차 배터리가 방전돼서 전원이 필요한 줄 몰랐던 모양이네. 잠시 기다리라며 여기저기 알아보고선 차가 왔으니 나와보라네. 

차를 가지고 온 친구가 처음엔 점프 케이블이 없는 것처럼 손짓을 하더니 트렁크에서 케이블을 꺼낸다. 이르쿠츠크에서도 그러더니 여기 인간들은 왜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케이블을 꺼내지 않고 없다는 제스처부터 취하는지 모르겠다. 선을 연결하고 10분 정도 지난 후에 시동이 걸려 담배 2갑으로 감사인사를 전한다. 사람들이 친절해서 참 고맙다. 주인여자에게 마눌님이 가지고 있던 우리 산악회 손수건 하나를 전하니 매우 고맙단다. 겨우 손수건 하나에 너무 고마워해서 오히려 더 미안하다.


시동 배터리만 믿고 점프케이블을 준비하지 않은 게 실수이겠지? 그 시동 배터리가 터져버린 후에 또 션찮은 충전기를 믿고 점프 케이블을 무시한 게 두 번째 실수겠지? 돌아가면 점프 케이블이 필요할까? 국내에선 자동차 서비스가 너무 좋아서 차에 관한 자질구레한 소품들은 거의 필요없고, 앞으로 내가 차를 가지고 해외로 나갈 일이 얼마나 될까 싶어서 아마 그런 건 구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그래서 출발은 12시 조금 전인데 사진찍고 어쩌고 하며 정신없이 출발하다보니 산길샘 시작을 까먹었네. 12시 3분, 길에서 산길샘을 작동한다. 마을로 들어오면 또 먼지투성이가 되는 이 도로 시스템은 참 이해하기 힘들다. 먼지를 날리며마을길을 지나 아무르 도로에 올라서니 여전히 노면은 좋아 속도가 오른다. 아침부터 배터리 때문에 고생한 탓인지 졸음이 빨리 오네. 길가 쉼터에 차를 세우고 10분 정도 눈을 붙이고 나니 훨씬 낫다.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으려는데 주유소가 정전이라네. 기름을 넣을 수가 없다. 이런 경우도 있네. 다음 주유소에서는 카드가 되질 않아 현금 1,500을 주고나니 남은 현금이 400도 안 된다. 돈을 또 찾아야 하는구나. 주유소 옆 카페에서 점심을 먹으려니 여기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기다리는 동안 식단을 보던 마눌님이 음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나가자네. 

이상하게도 오늘 구간에는 왼쪽에만 카페나 주유소가 있다. 이 길을 지나면서 숙소 때문에 고생했던 쉬마노프스크를 지나서, 지난 번에 1박했던 그 카페 가스티니차 오아시스에 들어간다. 사람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게 당연하지. 나는 어제 마눌님이 맛있게 먹던 굴라쉬에 밥, 마눌님은 동그랗게 말린 고기 종류에 밥. 


계산을 하려는데 처음엔 카드가 안 된다더니 돈이 모자란다니까 그제서야 카드로 결제한다. 가능하면 카드를 쓰지 않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한동안 카드기계가 고장난 탓일까? 그 동그랗게 말린 게 닭고기인데 맛있다네. 굴라쉬는 고기만 먹을 만 하고 국물은 양념이 익숙하지 않아 겨우 3/4 정도 먹고 남긴다. 나는 대체로 음식고르기를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길에 나서니 다시 자작나무 노란 단풍이 보인다. 어제 구간보다 위도가 좀 낮은데 어제 싱안링 이후부터는 보이지 않던 단풍이 보이는 게 좀 신통하다. 싱안링 동쪽에는 유난히 자작나무가 많다는 느낌이다. 그전에 자주 보이던 소나무 숲은 드물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툭 트인 벌판이 끝이 없다. 갈 때는 고도를 높이느라 아래로 시원하게 터진 벌판은 볼 수 없었는데 돌아오면서는 고도를 내리는 길이라 이렇게 시원한 벌판도 본다. 하긴 굳이 여기가 아니라도 이런 벌판을 많이 봐왔지. 시베리아는 무엇으로 기억될까? 바람은 여전히 강하게 불지만 기온은 조금씩 올라가는 것 같다.

숙소로 예정한 Lyuks호텔이 있는 자비틴스크는 병원마저 있는 큰 도시라고 현숙이 감탄한다. 그동안 길에서 병원 표지판을 많이 보기는 했지. 도시?로 들어가는 진입로 뿐만 아니라 마을 안 도로도 포장될 정도로 큰 마을이고 기차역도 크다. 호텔로 찾아가니 별 5개가 큼직하게 붙어 있어 모처럼 5성호텔?에서 자나 했는데 방이 없다네. 이런 시골 마을 호텔에 방이 없는 이런 경우도 있다. 여자가 알려주는 다른 숙소를 찾다가 포기하고 은행에서 현금만 인출한다. 구글보다 맵스미가 낫다. 다른 숙소를 찾아 다시 큰 길로 나가는 중에 마트에 들러 물과 달걀, 소시지 등을 산다.


7시 반 정도인데 해가 지고나니 거의 밤이라 운전이 좀 버겁다. 길이 좋아 속도는 120 정도를 유지하는데 이제 밤운전은 신경이 많이 쓰이네. 지난 번에 사고 이후 카잔 방향의 밤운전 이후 처음인가? 백야 덕분에 늦은 밤에도 어두운 걸 모르고 잘도 달렸는데 이제는 아니네. 오랜만의 밤운전이라 더 힘든 것 같다. 이제 어디서건 밤운전은 하지 않을 것이다. 

40분 정도 달려 노보부레이스키이 동네의 부레이스키 가스티니차에 오니 우리가 한국 사람인 걸 알고 매우 반가워하며 방 구하는 걸 도와주는 친구 덕분에 방을 쉽게 구한다. 이 가스티니차는 밖에서 보기와 달리 방이 18개나 되는 큰 숙소다. 카페도 딸려 있고 주유소도 있다. 어디서나 나타나는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를 매우 반기는데 줄 게 없구나.

소시지와 달걀을 풀어 끓인 라면으로 저녁 한끼 해결. 인터넷이 전혀 되지 않고 데이터 신호도 G하나만 겨우 뜨는 시골이라 저녁먹고 할 일이 없다. 그래도 전에 비해 인터넷이나 데이터 환경이 많 나아진 것 같기는 하다. 일찍 10시도 되기 전에 잔다. 

마눌님의 허리가 안 좋아서 오른 쪽 다리 오금이 자주 저린단다. 큰일이다. 내 손에도 검버섯이 피는 것 같다. 집에 돌아가면 시원하게 때목욕을 한번 하면서 자세히 살펴야겠다. 나이가 들면 검버섯이 피는 게 당연하지. 우리 나이로 65살, 내 나이를 자꾸 까먹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니다.